등록 : 2018.11.09 06:01
수정 : 2018.11.0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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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병역거부자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철창에 갇힌 행위극을 하고 있다. 이들은 "국방부가 준비 중인 대체복무안은 현역 육군 복무기간 기준의 2배인 36개월, 복무영역은 교정시설로 단일화, 국방부 산하 심사기구 설치를 골자로 하고 있다"며 인권기준에 맞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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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군복무기간 1.5배’ 넘지 말라는
국제기구 가이드라인 제시 못해
최영애 인권위원장 국감서 사과
유럽인권재판소 ‘1.5배 넘는 대체복무’
아르메니아 정부에게 손해배상 판결
유럽사회권 위원회·유엔 자유권위원회
“1.5배 초과 안돼” 입장 여러 차례 밝혀
병역대상자는 설문조사서 합숙이면
‘현역과 같은 기간’ 1순위로 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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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병역거부자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철창에 갇힌 행위극을 하고 있다. 이들은 "국방부가 준비 중인 대체복무안은 현역 육군 복무기간 기준의 2배인 36개월, 복무영역은 교정시설로 단일화, 국방부 산하 심사기구 설치를 골자로 하고 있다"며 인권기준에 맞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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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대체복무 기간에 대해 평균 복무 기간의 1.5배 넘지 말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국제기구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자료를 받았더니 현역 복무 기간의 1.5배를 넘지 마라라는 내용이 없습니다. 국제기구 가이드라인에 의해 현역 복무 기간의 1.5배 한 게 아니라면 위원장님은 허위, 위증입니다. 반드시 사과하셔야 한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제가 자료를 조금 더 챙겨서….
-김승희 의원:담당자 좀 일어나보세요. 국제기구에서 현역 복무 기간의 1.5배라고 하라는 내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심상돈 인권위 정책교육국장:그렇게 딱 얼마로 해라 명시한 건 없지만, 그 기간이라는 것은 현역 복무와 같은 강도의 대체복무...
-김승희 의원:제가 언급하고 싶은건 뭐냐면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 복무 기간의 1.5배를 넘지 말아야 한다고 인권위가 권고했습니다. 국제기구 가이드라인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복무 기간이 긴 경우에는 객관적, 합리적 기준을 해야 한다고만 되어있는 거예요. 그러면 1.5배는 인권위 자체에서 판단한 거지 국제기구 가이드라인을 받아서 한 거냐는 거에요.
-심상돈 국장:유럽인권재판소에서 2배를 한 경우에 대해 징벌적이라고 판결한 적이 있습니다. 각 나라별로 보면...
-김승희 의원:저한테 제출한 자료가 답변 내용과 맞지 않는다는 걸 지적한 거고요. 명백하게 위증입니다. 온 자료에 근거하면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국제적인 가이드라인에 의해서 1.5배 권고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근거가 없는 거 아닙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사과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위증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간사 간 협의 통해서 고발하거나 이런 조치가 필요하니까. 그 부분 사과하고 정리하시죠.
-최영애 위원장:김승희 의원이 잘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보고 내용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는데 판단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이게 저한테 올라온 자료들은 계속 그렇게 올라와서 그렇게 판단했는데 실제로는 여러 가지로 추정해서 그렇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국회운영위원회에서 7일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영애 위원장이 대체복무 기간 논란과 관련해 ‘사과’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인권위는 지난 8월 대법원에 낸 의견서에서 “현역 복무 기간의 약 1.5배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합숙 형태로 제도를 도입하되 차츰 기간 단축과 복무형태의 변화 등을 통해 제도를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현역 복무 기간의 1.5배’ 기준을 묻자, 최 위원장은 ‘국제기구의 가이드라인’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해 결국 ‘사과’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시민사회단체들은 8일 “‘대체복무제가 군 복무 기간의 1.5배 이상이면 징벌적’이라는 점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는 분명하다”며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먼저 짚고 가야 할 게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 복무 기간의 1.5배’라고 합의된 것은 아닙니다.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은 “대체복무의 기간은 병역기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유럽의회도 1993년 ‘유럽공동체의 인권존중을 위한 결의안’ 등에서 “대체복무제가 처벌이나 제지로 여겨지지 않도록 군 복무와 동일한 길이의 대체 민간 복무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1999년 프랑스인의 개인 청원 결정문에서 “대체복무 기간이 더 긴 경우에는 그러한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대체복무 기간을 두 배로 정한 이유는 양심의 진실성을 시험하기 위해서로 이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아니다”라며 자유권규약을 위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대체복무 기간의 원칙은 ‘현역 복무와 동일’하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경우 다소 길 수 있다는 게 국제사회의 분위기입니다. 이 경우 국제 인권 규범은 대체복무 기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현역 복무 기간의 1.5배’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제안했습니다.
■ 유럽인권재판소 “대체복무, 군복무기간 1.5배 초과 안 돼”
유럽인권재판소는 2017년 아르메니아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대체복무가 양심·종교의 자유를 위반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정부가 1만2000유로를 배상하라고 선고했습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유럽평의회 인권감독관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체복무는 군복무기간의 1.5배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아르메니아에서는 군복무기간이 24개월임에 반해 대체복무 기간은 이 기간의 1.5배보다 훨씬 더 긴 42개월이고, 복무 기간에서 큰 차이가 나면 억제 효과와 처벌적 성격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양심의 자유 같은 유럽 인권협약에 나오는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판소로, 47개 회원국은 판결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유럽평의회 사회권위원회는 개별 사건에서 여러 차례 대체복무 기간이 군 복무 기간의 1.5배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습니다. 사회권위원회는 2008년 에스토니아와 그리스 대체복무 사건에서 “유럽 사회권 헌장 1조 및 2조에 따르면 대체복무는 군 복무의 1.5배를 넘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1999년 프랑스(군복무기간의 2배) 2003년 러시아(군복무기간의 1.5배) 에스토니아(군복무기간의 2배), 2005년 그리스(군복무기간의 2배), 2015년 오스트리아(군복무기간의 1.5배)의 대체복무제가 “징벌적인 대체복무제”라고 우려한 바 있습니다. 자유권위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이 한국이 가입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에 위반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유럽인권재판소의 판단은 ‘대체복무 기간은 군 복무 기간의 1.5배 이내’가 국제사회의 가이드라인이라는 점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현재 정부의 대체복무제안으로 검토되는 현역 복무(18개월)보다 기간이 2배 긴 대체복무제는 유럽인권재판소 판례에 따른다면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수준이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쟁없는 세상, 참여연대도 이날 “군 복무의 1.5배가 넘는 대체복무 기간은 국제 인권 기준에 맞지 않으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헌법상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의 실현으로 인정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더 이상 처벌하지 말라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병역 대상자 “합숙하면 육군 병사와 기간 같아도 돼”
대체복무를 도입한 여러 나라의 사례도 참고할 만합니다. 김서영 국방부 인력정책과장은 지난 10월 ‘대체복무제 도입방안 공청회’에서 외국의 경우 다수의 국가에서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병의 1.5배 이하로 채택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독일, 에스토니아, 독일이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병과 같고 오스트리아, 스위스, 러시아, 벨라루스, 대만이 1.5배입니다. 그리스가 1.7배고 프랑스가 2배, 핀란드가 2.1배입니다.
그런데 핀란드는 현역 복무 기간이 5.5개월이라 2배라 해도 대체복무 기간은 11.5개월입니다. 한국의 육군 현역 복무 기간은 1년 6개월(18개월)로 긴 편이기 때문에, 2배가 되면 대체복무 기간은 3년(36개월)이 됩니다. 아르메니아와 함께 세계 최장기 대체복무 기간이 되는 셈입니다. 프랑스처럼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 “자유권규약 위반”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복무 기간의 ‘마지노선’이 ‘현역 복무의 1.5배’여야 하는 근거는 또 있습니다. 현역병의 2배 이상의 대체복무 기간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국민 공감대’나 ‘박탈감’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7월 1008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에서 대체복무 기간으로 가장 많은 응답자(33.4%)가 군 복무 기간의 1.5배를 선택했습니다. 군복무기간의 2배(28.9%), 군복무기간과 동일(19.4%)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연구용역을 통해 병역판정 검사 대상자 525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 조사에서도 “합숙 복무를 할 경우 적절한 대체복무 기간”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8.8%(199명)가 “육군 병사와 동일 기간”을 꼽았습니다. 그다음은 공군 병사(22개월)와 같은 기간(21.6%), 육군 병사의 1.5배(21.2%), 육군 병사의 2배(16.4%) 순이었습니다. 반면 ‘출퇴근’일 경우 적절한 대체복무 기간으로는 육군 병사의 2배(28.4%)를 가장 많이 선택했습니다. 연구보고서는 이를 “전문가나 병역거부 당사자들은 군 복무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예상해 대체복무 기간으로 상쇄해야 한다고 한다. 반면에 병역판정검사 대상자들은 복무 기간이 아니라 복무 중에 겪게 될 자유로운 생활이나 평등한 관계 등의 기본권 제약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현역병의 박탈감은 대체복무 기간을 늘리는 게 아니라 군대 내 인권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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