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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01 16:18 수정 : 2018.08.01 18:06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회사에서 직원이 야근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뉴스AS] 직장인 대나무숲 ‘블라인드’로 본 주 52시간제 시행 첫 달

‘저녁이 있는 삶’ 확산하는 가운데 초과노동 감추려는 ‘꼼수’도
“업무량 줄이고, 고용 늘려달라”는 하소연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회사에서 직원이 야근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단연 ‘주 52시간제’입니다. ‘주 52시간 노동 단축’이 도입된 지 1일로 딱 한 달이 되었는데요. 직장인들은 그토록 원하던 ‘칼퇴근’을 하고 있을까요? 직장인들이 회사, 상사 눈치 안 보고 속 얘기를 털어놓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7월 한달 동안 올라온 이야기들을 살짝 들여다봤습니다.

1. “주 52시간제 너무 좋아요!”…변화는 분명 일어나고 있다

“드디어 오후 4시30분에 퇴근하는 직원들이 보임. 저 시간에 퇴근하는 걸 보는 게 아직 적응 안 되지만 빨퇴(빨리 퇴근)를 원하는 사람에겐 진짜 좋은 듯” (만도헬라·닉네임 oh-i)

“(야근이) 엄~청 많이 줄었어. 한 달 동안 야근 한 번도 안 했음” (위메프·닉네임 삼성역요정)

“(회사에서) 집에 빨리 가래요. 좋아요” (포스코·닉네임 il11iiill1)

“넘나 좋아!!!!!!!! (직원) 90프로는 칼퇴하는 듯” (엘지화학·닉네임 봉산탈춤까꿍)

“저녁에 내 시간이 많아짐” (금호타이어·닉네임 일병라이언)

“전 개인적으로 너무 좋습니다. 삶이 달라졌음” (코웨이·닉네임 주식에도버물리를)

“거의 5시 퇴근 한 달 내내입니다. 돈은 가파르게 줄어드는데 5시에 (집에) 가니 오히려 행복합니다” (현대모비스·닉네임 1illl11)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칼퇴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직장인들은 제도 시행에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직장인들로, 야근이 사라지면서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급여가 줄기도 했지만,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취미생활을 시작하거나 운동, 어학공부 등 자기만의 시간을 갖게 돼 행복하다는 직장인들은 일터에서 달라진 변화를 실감하고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저녁 6시, 윤 대리는 꿈꿨던 발레복을 꺼내 입는다)

2. ‘칼퇴’는 남 얘기! “주 52시간? 그거 먹는 건가요?“

“뉴스는 ‘공공기관 52시간 (근로) or 칼퇴’지만 현실은 ‘무급으로 연장근무’” (서울교통공사·닉네임 기꾼)

“52시간 6개월 처벌 유예 때문에 기존이랑 똑같이 (주당) 70시간 이상 일한다! 처벌하라고~” (현대엔지니어링·닉네임 Fire eggs)

“주 52시간 넘게 근무했는데 뭐 큰일 안 나더라. 노동부가 어찌 알리. 내가 52시간 넘게 근무했는지 안 했는지” (동원에프앤비·닉네임 마지막소원)

“52시간 하고선 저녁 있는 삶 됐냐? 하기 전이랑 차이를 모르겠다. 시간은 똑같은데 괜히 위에서 쪼는 것만 늘어서 화장실 가는 거, 담배 피는 거 전부 눈치만 더 보이고 월급도 줄어들 예정인데 하…” (삼성물산·닉네임 ljiillllli)

“52시간 피씨(PC) 온오프(on/off)로 하는데요. 솔직히 그것보다는 (일을) 많이 하거든요. 카톡으로도 업무 상황 체크하고, 뉴스 보라고 하고, 컴퓨터 꺼지면 다른 컴퓨터로 일하라고 하고” (롯데건설·닉네임 UmBG72)

“보통 외국이랑 글로벌하게 일해서 24시간 연락 온다 ㅠ 퇴근은 제2의 업무 시작”(삼성전자·닉네임 PTzW78)

앞서 살펴본 대로 주 52시간제의 수혜자가 된 직장인들도 있지만, 실제 노동 현장에선 ‘우리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딴 세상 얘기’라고 하소연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피씨 강제종료’를 시행하고 있지만, 퇴근 뒤에도 메신저 등을 통해 업무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든가, 시차가 나는 국외 업체와 협업을 하는 담당자의 경우 퇴근 뒤 ‘숙제’같은 추가 업무를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7월1일치로 ‘저녁이 있는 삶’이 찾아오리라 잔뜩 기대했던 이들은 정부가 6개월 동안의 계도기간(처벌·단속 유예기간)을 두기로 방침을 정한 데 대해 크게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뉴스에선 52시간제 도입 이후 ‘칼퇴’하는 직장인들의 이야기가 떠들썩하게 나오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에 되레 상실감이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첫 월요일인 지난달 2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전자상거래 기업 위메프 본사에서 직원들이 정시 퇴근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 회사는 나의 초과노동을 어떻게 숨겨버렸나?

“난 52시간 넘었는데 제외시간 안 올렸다고 핀잔 먹음. 이건 뭐 무료노동만 더 늘어난 꼴임” (삼성디스플레이·닉네임 apUY60)

“52시간 넘겨서 (일) 한 건 수당만 못 올리게 바뀜 ^~^” (현대오일뱅크·닉네임 uHzS74)

“일 너무 많으면 예외시간 처리… 일 했지만 전산상에는 안 한 거로… 52시간으로 줄이면 기업이 착하게 ‘아이고, 이런 일은 그대로고 업무시간 줄이라니 고용 더 해야겠다’ 이럴 줄 알았을까 정부는?” (삼성전자·닉네임 ill!!ili!)

“(상사가) 주 52시간 맞추려고 일찍 퇴근하래. ‘아직 안 끝났는데요?’라고 하니까 집에 가서 (일) 하래” (엘지화학·닉네임 똑!똑!똑!)

“이번 주 근무시간 60시간 초과 예정. 11시간30분, 11시간30분, 11시간30분, 10시간30분, 11시간 30분. 이러고 내일 주말 4시간 출근. 이제 휴게시간으로 52시간 맞춰야지” (에스케이하이닉스·닉네임 슈벅콩콩)

“52시간 근무제가 무슨 소용? 야근해도 어떠한 입력도 못 하는 상황인데” (한국도로공사·닉네임 저는 국도만 탑니다)

직장인들은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시간이 발생했을 경우 회사가 근로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처리하거나 혹은 야근·주말근무를 한 경우 노동시간을 입력하지 못하도록 ‘꼼수’를 부렸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일을 못 끝낸 자신에게 52시간제에 맞춰 ‘퇴근하라’고 지시하면서도 집에서 업무를 마치도록 요구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잦은 야근도 불만스럽지만, 일을 해도 노동시간을 인정받지 못하는 ‘무료노동’ 또한 억울하긴 마찬가지니까요.

4. 에스케이(SK)하이닉스 직원의 눈물…‘죄조기술’을 아십니까?

지난달 9일 ‘블라인드’에는 에스케이하이닉스(이하 하이닉스)에 근무하는 한 직원(닉네임 개똥같은내회사)의 고백이 나왔습니다. 사내 게시판에 주 52시간 초과 근무에 대한 내부고발 글이 올라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 회사의 한 직원이 월∼금요일, 일요일 6일 동안 회사 건물에서 모두 79시간이 넘도록 머물렀는데, 회사 쪽에서 52시간 노동시간을 맞추기 위해 하루 평균 3∼4시간가량을 비근로 시간(휴게시간)으로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쓴 이는 하이닉스에 근무하는 직원의 부인으로, 글쓴이는 이 글에서 “결혼 3년차에 이제야 52시간 근로제로 바뀌면서 (남편과 함께) 조금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근로시간은 똑같고 수당만 줄어든 꼴이 되었다”고 답답해했습니다. 이 직원은 공정(제조기술)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블라인드’ 게시판에서 하이닉스 공정(제조기술)업무 직군은 일명 ‘죄조기술’로 불립니다. ‘제조기술’을 ‘죄조기술’로 잘못 쓴 것 아니냐고요? 단순한 오타가 아니었습니다. 반도체 제작시설인 ‘펩’(Fab)에서 근무하는 공정 직군이 과도한 업무량으로 유명한 탓에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 죄조기술 직군이 됐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에 대해 하이닉스 직원들은 “(제조기술 파트에서 52시간제) 개무시. 휴게시간 입력 장려 협박함. 52시간제 되면서 (회사의 초과노동 시간 처리 방식 때문에) 죄조기술 휴게시간도 많고 회사 놀러 다니는 팀이야 이직 고고” (닉네임 각자의 새벽), “맞아. 누가 보면 (제조기술 직군은) 하루에 3~4시간씩 흡연에 커피 마시니깐. 죄다 놀러 다니는 사람들이야” (닉네임 ch), “제조기술은 52시간 거의 풀로 채우고, 넘으면 휴게시간 쓰고 있음. 팀장이 은연중에 넘으면 휴식시간으로 올리라 함” (닉네임 hedgehog92)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이닉스 쪽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해당 논란과 관련해 “그 건 자체는 팩트가 맞다. 지난 3월부터 선택적 근로시간제(2∼4주 평균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맞추는 것) 도입을 추진해왔는데, 직원들에게 관련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첫 주에 그러한 일(52시간 초과노동)이 생겼던 걸로 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래픽 김승미

5. 그러나 ‘부바부’ 공식은 존재한다

물론 하이닉스 직원 모두가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바부’(부서바이부서·부서에 따라 상황이 다르다는 뜻)의 공식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회사 내에서도 부서별 업무 특성에 따라 주 52시간 근로가 제대로 지켜지는 부서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부서가 있었습니다.

실제 ‘블라인드’에서 활동하는 하이닉스 직원들 중에는 “(52시간제) 잘 지켜짐. 40시간 채우기가 힘듦” (닉네임 패키지), “칼퇴 하는데? 여긴 분당” (닉네임 !!i!ii!ii) 등 자신은 주 52시간제의 혜택을 받고 있음을 설명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부서 간 격차는 앞서 주 52시간제가 잘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언급된 다른 대기업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같은 회사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업무량과 업무시간에서 큰 차이가 나타나다 보니 하이닉스의 한 직원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진짜 이런 얘기 들으면 회사는 생각이 XX 없다는 게 느껴진다. 누구는 40시간 채우기도 버거워하고, 누구는 70시간을 근무하고. 월급은 별 차이 없고…” (닉네임 말고다른데가고싶다)

6. 주 52시간제만 하지 말고 사람을 더 뽑아주세요

“주 52시간에 끝낼 수 있는 일을 줘야지. 업무는 많고 사람은 없는데, 이러면 집에 일 싸들고 가서 할 수밖에. 딱 52시간만 하면 일 제대로 안 되고 내가 욕 듣는데 어쩌라는 건지” (한국공항공사·닉네임 llilliill0)

“제도가 쓰레기가 아니라 회사가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2, 3명이 나눠서 할 일을 한 사람한테 준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업무량이 과중하죠” (디비하이텍·닉네임 lllllla)

“제도 자체는 좋아. 문제는 주 60~80시간짜리 일 던져주고서 ‘주 52시간 근무해야 되니까 집중해서 해!’라고 하고선 근로자 욕하는 회사가 문제지. 사람 더 뽑으라고” (국민은행·닉네임 숲속에광어)

“대기업 사무직도 마찬가지예요. 원래 업무량 많지 않은 부서면 모를까 퇴근은 일찍 하라면서 인력 충원은 없고 업무량은 그대로고. 저희 남편 부서 사람들은 일 싸들고 퇴근해서 집에서 일해요. 전엔 돈이나 받고 야근했지, 이젠 자원봉사하는 것 같네요” (케이이비하나은행·닉네임 공인인증서는스스로)

직장인들은 주 52시간제 시행의 결과 ‘근로시간은 줄었지만, 업무량은 그대로’라며 회사가 일할 사람을 더 뽑아주기를 바랐습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제도적 변화는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직원 한 명에게 과도한 업무를 부과하는 기업 문화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개인의 노동 강도만 높아지고, 회삿일을 집에 가져가 처리하는 상황만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정한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선 지금보다 노동시간을 더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현행 주 52시간제는 법정근로 시간(40시간)에 연장근로 시간(휴일근무 포함 12시간)을 더한 것인데, 이 제도로는 사실상 평일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해서 ‘오전 9시 출근, 저녁 8시 퇴근’을 해도 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래(주 52시간제 시행 이전)도 아득한 수준의 (장시간) 야근은 불법이었어. 정부 눈치를 봐서든 하여튼 감내할 수준의 야근이 된 거지 칼퇴는 아니잖아” (대한항공·닉네임 도쿄카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분명한 것은 주 52시간제는 장시간 노동에 따른 한국 사회의 여러 폐해를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제도의 정착을 위해선 적지 않은 시간과 보완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제도가 안착하기까지 주 52시간제를 둘러싼 여러 갈등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대기업 직원(현대오일뱅크·닉네임 Daiquiri)이 ‘블라인드’에 남긴 글은 우리가 주 52시간제를 통해 한 번쯤 고민해 볼만한 문제 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고용주들 입장에선 사람들의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 자체가 리스크라기보다는 사람들이 회사에 묶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 경계하는 게 아닐까 싶음. 그냥 계속 그렇게 일하는 게 당연해야만, 하루 종일 직원들이 회사에 억압되어 있는 게 당연해야만 더 그들이 무기력해지며 통제하기 쉬워질 테니까. 쉬워질수록 다른 생각하기 편해질 테니까. 돈보다 두려운 게 통제를 잃는다는 두려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음”

마지막으로 ‘블라인드’를 이용하는 직장인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회사가 주 52시간이 넘는 근무를 강요하면서, 노동 시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꼼수’를 부릴 땐 익명 게시판에 글만 올리지 마시고, <한겨레>에 제보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디로 연락하면 되냐고요? 제 메일 주소는 sun@hani.co.kr입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 오는 그 날까지, 회사의 꼼수를 ‘뿌셔뿌셔!’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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