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06 20:44
수정 : 2018.12.09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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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6일 울산 현대차 공장 안에서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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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노사협이 임금·근로조건 정하면
누적 생산 35만대까지 유효’ 싸고
현대차-노조 대립해 좌초 위기
법적으론 노사협 조항 강제력 없고
단협 유효기간도 2년 못 넘기는데
사쪽 “임금 올려달라면 투자 못해”
노조에선 “노동자 기본권 제약” 반발
광주시도 신뢰 잃어 탈출구 안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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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6일 울산 현대차 공장 안에서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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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형 일자리’가 좌초 위기에 빠졌습니다. 지난 6월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협정서 조항 하나 때문에 고비를 넘지 못했습니다.
‘신설법인 노사협의회 결정사항의 유효기간은 조기 경영안정과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누적 생산 목표대수 35만대 달성까지로 한다.’
새 공장의 노사협의회가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한번 정하면 35만대 생산 때까지 바꾸지 말자는 겁니다. 현대자동차가 이 공장에 위탁할 물량이 연간 7만대이니 사실상 5년 동안 유지하자는 것이죠. 노동계는 “초법적 발상”이라며 반발했습니다. 이미 지난 5월 광주시와 현대자동차의 잠정 합의안에 ‘노사협의회 결정사항은 최소 5년간 유효성이 보장되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노동계 반대로 빠진 적이 있는데요. 이 조항이 문구를 바꿔 다시 포함되면서 문제가 됐습니다.
노동계 말대로 이는 현행 노동조합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노사협의회는 노사가 대등하게 ‘협의’를 하는 기구로 법적인 구속력이 없어요. 반면 새 공장에서 일하게 될 이들이 노조를 만들어 ‘단체협약을 맺자’고 요구한다면 회사는 노사협의회 결정이 어떻든 교섭에 나서야 합니다. 노동조합법이 정한 단체협약 유효기간은 최장 2년입니다. 2년마다 노사가 단체협약을 통해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새로 정할 수 있어야 헌법이 정한 ‘노동 3권’ 가운데 하나인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이 보장된다는 취지입니다.
강제력도 없는 이 조항이 어떻게 광주형 일자리 타결을 가름하는 걸까요? 한국 노사 간에 쌓인 깊은 불신이 배경에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이라 할 ‘적정임금’을 일정 기간 유지해야 새 공장이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현대차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새 공장 노조를 믿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최근에는 대공장 노조들이 하후상박 임금인상안을 제시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대공장이 열심히 투쟁해서 임금을 많이 올려야 중소기업 임금도 오른다는 전략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광주형 일자리는 적정임금으로 지속가능한 공장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인데, 그 공장 노조가 매년 ‘연봉 5천만원 달라, 6천만원 달라’고 한다면 어떤 투자자도 못 들어갈 것”이라며 “선언적 약속마저 합의가 안 되면 이 프로젝트의 안정성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5일 문제의 ‘35만대 조항’을 협정서에서 빼자는 광주시의 제안에 현대차가 “투자 타당성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안”이라고 밝힌 배경입니다.
지역 노동계는 이런 현대차의 태도가 “노동계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합니다. 이기곤 전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광주지회장은 “이미 우리는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과 광주형 일자리 취지에 공감하며 협상에 참여했는데, 광주시와 현대차는 노동자의 기본권마저 제약하는 내용을 가져왔다. 지켜야 할 선을 넘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조항이 있으면 단체교섭권이 보장돼도 노조가 임금·근로조건 개선을 말하기 어려운 ‘사회적 압력’이 생길 것이란 짐작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게다가 한국 기업들이 노사협의회를 단체교섭을 회피하는 도구로 사용해오기도 했고요.
여전히 광주시와 지역 노동계, 현대차 3자 모두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태도를 보이고는 있지만 타결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협상이 무산된 뒤 투자유치단의 한 핵심 관계자는 “광주형 일자리는 한국 자동차 산업 특유의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넘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보려는 시도인데, 또 그 잔재에 발목이 잡히는 형국”이라고 말했습니다. 노사 양쪽의 불신을 잠재울 주체는 현재로선 광주시뿐이지만, 정작 노와 사가 모두 광주시를 믿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노사 사이 접점을 찾겠다며 어느 쪽에도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 신뢰를 잃은 것입니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협상을 이끌기에 광주시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노사 양쪽에서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광주형 일자리가 성사되려면 기존의 대립적 노사관계를 넘어 탄탄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지향이 제시돼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노동 문제는 협약서 하나로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사가 자생적으로 적정 임금을 유지하면서 작업장 민주주의를 지켜낼 전략이 지금으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논의의 투명성이나 지속가능한 일자리에 대한 믿음이 생길 때 노사 간 양보와 조정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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