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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칼럼] 맥아더의 오판을 반복해선 안 된다 |
곽병찬
지금도 사드 배치를 놓고 중국의 경고가 거듭되고 있다. 중국의 협조가 없다면 북한의 핵과 장거리미사일 개발을 중지시키고, 궁극적으로 비핵화를 실현할 수 없다.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10월15일 맥아더는 트루먼 대통령과 만났다. “중국이 한국전에 개입하지 않겠는가?”(트루먼) “우리는 중공군의 개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중공군에는 공군이 없다.” 맥아더는 중공군이 개입해도 2만~3만명만 맛보기로 참전할 것으로 봤다.
중국은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자 이렇게 경고했다. “(이는) 중국의 안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 중국 인민은 미국의 침략전쟁에 맞서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10월9일) 경고는 계속됐다. 북진이 계속되자 중공군은 평양 함락 즈음부터 30만 대군을 평안북도 동북부 산악지대와 함경도 개마고원 일대에 포진시켰다.
맥아더는 이를 무시하고 동부전선에서 10월10일 원산, 17일 함흥과 흥남을 점령했고 서부전선에선 19일 평양을 점령했다. 26일엔 한국군 6사단 선발대가 압록강변 초산에 이르렀다. 북한 정권의 임시수도인 평안북도 강계만 점령하면 전쟁은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야전군과 미국 중앙정보국, 군 정보기관은 중공군의 전면적 개입을 거듭 경고하고 있었다.
결국 10월26일 평안북도 동북지역에서 중공군의 대공세가 시작됐다.(1차 공세) 미 1군단과 한국군 2군단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청천강 이남으로 철수했다. 중공군 포로를 통해 중국의 전면적인 개입이 확인됐지만, 맥아더 사령부는 외면했다. 중공군은 열흘 남짓의 공세 뒤 슬그머니 사라져 맥아더의 오판에 날개를 달아줬다.
사라진 중공군은 퇴각한 게 아니었다. 13병단의 18만여명은 다시 적유령산맥에, 9병단 12만여명은 장진호 및 개마고원 일대에 매복하고, 미군이 포위망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맥아더는 11월24일 다시 대규모 압박포위작전의 개시를 명령하면서 ‘크리스마스까지 전쟁을 끝내겠다’고 언론에 공언했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서부전선의 미육군 1, 9군단과 한국군 2군단은 일찌감치 중공군의 2차 공세에 치명상을 입고 38선 이남으로 퇴각했다. 미해병 1사단은 황초령을 넘어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지나 하갈우리에 사단 사령부를 설치하고 6연대는 장진호 북단 유담리까지 진주했다. 9병단이 10배가 넘는 병력으로 포위 공격을 시작한 건 그때였다. 2차 세계대전의 모스크바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3대 동계전투의 하나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는 이렇게 펼쳐졌다.
12월11일 죽음의 계곡 남단 중흥리를 빠져나오기까지 해병 1사단은 무려 7294명의 사상자를 냈다. 미군 전사는 ‘역사상 가장 고전한 전투’로 기록했고,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진주만 피습 이래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해병 1사단은 퇴각하면서 중공군 9병단을 무력화시켜 추격전을 포기하게 했다. 9병단이 건재했다면 흥남철수는 불가능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피난민의 아들로 거제에서 태어날 수 없었다.
미국은 지난 5월 버지니아주 워싱턴 인근의 미국해병대박물관에 장진호전투 기념비를 세웠다. 문 대통령은 오늘 바로 그 기념비에 헌화하는 것으로 미국 공식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흥남철수 피난민의 아들로서 미국민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데 이보다 더 의미있는 행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헌화가 단지 감사와 추모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를 통해 최고사령관의 오만과 오판이 얼마나 큰 희생을 초래했는지, 결과적으로 북한을 지금 미국의 ‘실존적 위협’으로 만들었는지 미국 국민과 정치권이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무의미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맥아더가 그때 중국의 경고를 귀담아들었다면 하는 아쉬움까지 지울 수는 없다. 평양과 원산을 잇는 선에서 북진을 멈추고, 중국과 외교적 교섭을 통해 전쟁의 중지 혹은 종전을 절충했다면 지금 한반도 정세는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도 사드 배치를 놓고 중국의 경고가 거듭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중국의 경고를 무시하거나, 얕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 그런 것처럼 중국 역시 안보 국익의 침해에 대해서는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장진호 전투는 그 증거다. 중국의 협조가 없다면 북한의 핵과 장거리미사일 개발을 중지시키고, 궁극적으로 비핵화를 실현할 수 없다. 그런 중국의 강력한 요청을 무시하는 건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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