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북한 인민군창건일도 ‘무탈하게’ 지나갔으니, 한반도 4월 위기설은 일단락됐다. 남북 양쪽은 화력시위로 맞섰지만, 전쟁 위기감을 겪었던 터라 콩 볶는 소리로만 들렸다. 종합주가지수도 26일 오전 6년 만에 2200선을 넘기고 코스피 사상 최고치 경신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전쟁위기설이 시장을 얼마나 옥죄었는지 알 만하다. 돌아보면 위기론은 항상 외부에서 촉발됐다. 남쪽 요인으로 발생한 경우는 없다. 이번에도 북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 그리고 미국에 의한 선제공격 가능성으로 말미암아 촉발된 것이었다. 북한이 으레 도발하곤 했던 김일성 생일(15일)과 인민군창건일(25일)을 앞두고 미국의 핵항모 칼빈슨호 전단이 한반도 해역으로 북상하고 있다는 미국의 발표가 기폭제였다. 10여일 만에 기만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남북은 물론 중국까지도 전비태세를 발령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와 군도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응을 했다. ‘대규모 응징’, ‘단호한 응징’, ‘강력한 응징’, ‘처절한 응징’ 등 할 수 있는 최고의 강한 표현의 경고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품이 나왔다. 무엇으로 응징한다는 거지? 북·미가 핵전쟁 불사를 외치며 드잡이하는데. 솔직히 지금 우리 정부와 군에게는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북의 도발을 억제할 수단이 없다. 미국의 눈치를 보며 자주국방체제 구축을 사실상 포기했고, 그나마 개성공단 등 도발 억제의 지렛대마저 포기했다. 재래식 군사력에서 달리는 건 아니다. 구매력 기준으로 북한보다 대략 4배 정도의 군사비를 우리는 십수년째 쓰고 있다. 한-미 연합 전력을 보면, 전쟁 발발 시 북한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문제는 승패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입을 피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1994년 1차 북한 핵 위기 때 미국 쪽 시뮬레이션 결과,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명을 포함해 수도권에서 150만명의 인명이 살상되고, 1주일 안에 군 병력만 최소 100만명이 사망하고, 민간인 사상자는 500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산업시설은 물론 초토화된다. 당시는 북의 핵무기 개발 전이었다. 북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경우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석기시대로 돌아간다. 언제나 그렇듯이 위기설 속에서, 막말로 재미를 본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중국으로 하여금 북에 대해 행동에 나서도록 했다. 한국에는 안전보장에 대한 추정 불가능한 액수의 청구서를 내밀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 18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 추진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미국에 유리하게끔 바꾸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위기설이 사실상 종료된 26일 0시 미국은 경북 성주에 발전기만 빼고 사드 1기에 해당하는 장비를 모두 반입했다. 사드가 대한민국의 심장인 수도권 방어와는 무관하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중국의 더 거친 반발은 피할 수 없다. 그것만이 아니다. 사드 1기의 배치 및 운용 비용은 대략 1조5천억~2조원 정도라고 한다. 미군은 2기를 배치하려 한다. 비용은 누가 댈까. 박근혜 정권과 그 지지자들은 그동안 사드 배치를 위해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미국이 제시할 청구서를 반려할 염치가 없다. 한편에선 생돈을 쏟아부어야 하고, 다른 쪽에선 경제보복을 당해야 하니 등 터지는 건 우리 국민이다. 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가 계속되고 있다. 지루한 토론회 속에서 얻은 솔깃한 발언 한마디가 있었다. ‘안보엔 좌우가 없다’는 안철수 후보의 말이었다. 물론 보수표를 의식해 급선회하다 보니 내용은 맹탕이다. 그러나 수사만으로도 적절한 슬로건이었다. 북핵 시설에 대한 폭격을 감행하려 했던 건 미국에선 상대적 좌파였던 클린턴 대통령이었다.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것도 그였다. 미국은 좌우를 떠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최우선의 목표로 삼는다. 홍준표 후보가 닮았다는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안보에는 좌우가 아니라 무능과 유능만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무능한 자들은 자주적인 안보 역량을 키우거나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안보 장사를 통해 권력을 장악·유지하려 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선 악마와도 대화하고 타협해야 하지만, 그런 노력을 빨갱이로 몰았다. 안철수 후보 지지자들이라면 이 한마디는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안보에는 좌우가 없다. 유·무능만 있다. chankb@hani.co.kr
칼럼 |
[곽병찬 칼럼] 안보에 좌우는 없다, 유·무능만 있을 뿐 |
대기자 북한 인민군창건일도 ‘무탈하게’ 지나갔으니, 한반도 4월 위기설은 일단락됐다. 남북 양쪽은 화력시위로 맞섰지만, 전쟁 위기감을 겪었던 터라 콩 볶는 소리로만 들렸다. 종합주가지수도 26일 오전 6년 만에 2200선을 넘기고 코스피 사상 최고치 경신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전쟁위기설이 시장을 얼마나 옥죄었는지 알 만하다. 돌아보면 위기론은 항상 외부에서 촉발됐다. 남쪽 요인으로 발생한 경우는 없다. 이번에도 북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 그리고 미국에 의한 선제공격 가능성으로 말미암아 촉발된 것이었다. 북한이 으레 도발하곤 했던 김일성 생일(15일)과 인민군창건일(25일)을 앞두고 미국의 핵항모 칼빈슨호 전단이 한반도 해역으로 북상하고 있다는 미국의 발표가 기폭제였다. 10여일 만에 기만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남북은 물론 중국까지도 전비태세를 발령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와 군도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응을 했다. ‘대규모 응징’, ‘단호한 응징’, ‘강력한 응징’, ‘처절한 응징’ 등 할 수 있는 최고의 강한 표현의 경고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품이 나왔다. 무엇으로 응징한다는 거지? 북·미가 핵전쟁 불사를 외치며 드잡이하는데. 솔직히 지금 우리 정부와 군에게는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북의 도발을 억제할 수단이 없다. 미국의 눈치를 보며 자주국방체제 구축을 사실상 포기했고, 그나마 개성공단 등 도발 억제의 지렛대마저 포기했다. 재래식 군사력에서 달리는 건 아니다. 구매력 기준으로 북한보다 대략 4배 정도의 군사비를 우리는 십수년째 쓰고 있다. 한-미 연합 전력을 보면, 전쟁 발발 시 북한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문제는 승패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입을 피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1994년 1차 북한 핵 위기 때 미국 쪽 시뮬레이션 결과,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명을 포함해 수도권에서 150만명의 인명이 살상되고, 1주일 안에 군 병력만 최소 100만명이 사망하고, 민간인 사상자는 500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산업시설은 물론 초토화된다. 당시는 북의 핵무기 개발 전이었다. 북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경우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석기시대로 돌아간다. 언제나 그렇듯이 위기설 속에서, 막말로 재미를 본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중국으로 하여금 북에 대해 행동에 나서도록 했다. 한국에는 안전보장에 대한 추정 불가능한 액수의 청구서를 내밀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 18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 추진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미국에 유리하게끔 바꾸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위기설이 사실상 종료된 26일 0시 미국은 경북 성주에 발전기만 빼고 사드 1기에 해당하는 장비를 모두 반입했다. 사드가 대한민국의 심장인 수도권 방어와는 무관하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중국의 더 거친 반발은 피할 수 없다. 그것만이 아니다. 사드 1기의 배치 및 운용 비용은 대략 1조5천억~2조원 정도라고 한다. 미군은 2기를 배치하려 한다. 비용은 누가 댈까. 박근혜 정권과 그 지지자들은 그동안 사드 배치를 위해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미국이 제시할 청구서를 반려할 염치가 없다. 한편에선 생돈을 쏟아부어야 하고, 다른 쪽에선 경제보복을 당해야 하니 등 터지는 건 우리 국민이다. 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가 계속되고 있다. 지루한 토론회 속에서 얻은 솔깃한 발언 한마디가 있었다. ‘안보엔 좌우가 없다’는 안철수 후보의 말이었다. 물론 보수표를 의식해 급선회하다 보니 내용은 맹탕이다. 그러나 수사만으로도 적절한 슬로건이었다. 북핵 시설에 대한 폭격을 감행하려 했던 건 미국에선 상대적 좌파였던 클린턴 대통령이었다.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것도 그였다. 미국은 좌우를 떠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최우선의 목표로 삼는다. 홍준표 후보가 닮았다는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안보에는 좌우가 아니라 무능과 유능만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무능한 자들은 자주적인 안보 역량을 키우거나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안보 장사를 통해 권력을 장악·유지하려 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선 악마와도 대화하고 타협해야 하지만, 그런 노력을 빨갱이로 몰았다. 안철수 후보 지지자들이라면 이 한마디는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안보에는 좌우가 없다. 유·무능만 있다.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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