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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03 18:07 수정 : 2019.03.03 19:35

꽤 오래전 어느 정치인이 너무 고령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답변했는데 그의 정치적 의도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성찰해야 할 부분을 따끔하게 지적한 말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불필요하게 서로의 나이를 숫자 이상으로 따진다는 점을 반성해볼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히 나이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비합리적인 문화’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신문 기사에도 등장하는 사람들의 나이를 늘 밝혀왔다. 요즘에 와서는 유명인사나 공직자들의 이름에는 나이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이런저런 사건·사고에 얽힌 사람들에게는 나이가 꼬리표처럼 달린다. 연예인이나 체육인과 같은 인기인들의 나이도 자주 공개된다.

1980년대 초에 독일에서는 매우 세밀한 정보를 묻는 인구조사를 하려다가 거센 반발에 취소된 적이 있다. 종교를 묻는 항목에 ‘유대교’라는 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행한 과거를 잊지 않고 있는 독일 국민들에게는 대단히 황망한 질문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나이 같은 불필요한 정보가 노출되면 당연히 불필요한 감성이나 고정관념 따위가 생긴다.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나이는 알아보지도 말고 묻지도 못할 사적 정보로 규정해야 한다.

합리적인 조직에서는 나이나 고향이 아닌 경력이나 업적만을 근거로 공무를 처리하는 게 옳다. 특히 상대방 나이를 묻고 자기 동생 같다는 둥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라는 둥 하는 문화는 우리 사회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악습이다. 서류에서도, 면접에서도 나이 정보를 삭제하고 대화에서도 나이를 묻거나 연상시키는 화법을 교양에 어긋난 것으로 규정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언어 교양’을 성취하지 않은 채로 ‘4차 산업혁명’ 입문은 우리 한국어 사용자에게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김하수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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