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2.27 19:00
수정 : 2015.12.27 19:00
연말이 되면 경기가 좋든 나쁘든, 또 호주머니 사정이 어떻건, 촘촘한 송년회 일정으로 바쁘면서도 들뜬다. 오랜만에 탁자에 둘러앉아 잔을 나누게 되면 잔을 부딪치며 ‘한마디’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는 ‘딱 그 한마디’가 쉽지 않다. 오래전에는 거의 대부분이 무작정 ‘브라보’였는데, 언젠가 ‘위하여’가 대세를 이루다가 최근에는 그것도 좀 시시해진 모양이다.
건배사만이 아쉬운 것이 아니다. 누구에겐가 진정 기쁜 일이 생겼을 때, 그 마음을 짤막하게 전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냥 축하한다고만 할까, 아니면 부럽다고 해야 할까, 우리의 말이 퍽 마땅찮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또 궂은일에 대해서 위로를 해야 할 때도 도대체 뭐라고 해야 인사도 되고, 격려가 될지 퍽 막막하다. 누구한테든지 공감되는 말을 찾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 공적인 관계인지 사적인 관계인지에 따라 무언가 빛다른 표현을 하고 싶어도 대개 어중간한 말 몇 마디에 나머지는 표정으로 대충 메우게 된다. 우리의 언어는 표준어를 결정할 때 어휘의 기준만 겨우 설정됐지, 적절한 사용법의 기준은 제대로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공적인 모임에 가서도 첫인사를 그저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정도로 대충 때우고 있다. 이 얼마나 껄렁한 언어문화인가?
이러한 ‘경우에 맞는 말’들은 대단한 지식인이 제안해서 표준화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광범위한 시민사회 속에서 형성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유대’ 속에서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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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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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 좋다고 하고, 당장 내년의 삶도 불안하지만 어려운 세상에 남들과 서로 공감 어린 말을 나눈다는 것도 중요한 삶의 에너지이다. 가까운 이들과 공감대를 두텁게 쌓아가는 진심이 깃든 ‘딱 그 한마디’를 찾아두는 소박한 지혜가 필요하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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