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9.13 18:39
수정 : 2015.09.13 18:39
누군들 자신이 다녔던 학교를 명문이라 일컫는다고 질색하랴? 모교가 유명해지면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졸업생들도 괜히 으쓱해질 것이다. 또 명문으로 이름난 학교 졸업생들은 취업 과정에서 얻는 이익도 상당할 것이다. 명문이라는 평판은 개인적으로도 대단히 큰 자산이지만 사회적으로도 큰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돌이켜 생각해 보자. 한국 사회의 명문은 과연 무엇인가? 한국의 명문은 순위가 바뀌지도 않고 새로운 명문의 탄생도 거의 불가능하다. 한번 명문으로 꼽히면 다시는 주저앉지 않는다. 한 대학이 명문이라는 말을 들으면 모든 학과가 명문 대우를 받는다. 심지어 신설 학과나 부속기관까지도. 공정한 경쟁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명문의 의미는 사실상 기득권을 뜻한다. 그렇기에 명문이라는 소문이 중요하지 그 내실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일단 한 학교 출신을 많이 채용하면 내부의 위계질서를 통해 후배들은 선배들한테 충성을 바치며 성과가 빨리 나타난다. 그런 식으로 특정 학교 출신을 많이 채용하면 그들은 더 이상 공적 조직이 아니라 사적 조직이 될 위험성이 더 커진다. 최고경영자가 동문일 경우는 더 심각하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학교 차이에 대한 세평은 믿을 게 못 된다. 졸업생들의 활동이 ‘지금’ ‘현장에서’ 얼마나 공적으로 의미가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분명한 공적인 잣대에 의해서 명문이라는 명예를 허락해야 한다. 그래서 그 명예가 떠도는 소문 덕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들의 절차탁마의 산물이자 공적인 평가의 결과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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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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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는 기술의 명문, 예술의 명문, 사회봉사의 명문, 공동체의 선구자를 배출한 명문 등의 다양한 명문들을 기대해 본다. 명문이라는 단어는 그 아름다운 이름에 몹시도 고약한 기능을 해왔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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