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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살이] 5678님 / 강재형 |
“강재형 씨, 카운터에 전화 와 있습니다.” 음악이 흐르는 다방에서 드물게 듣던 ‘디제이 멘트’이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강재형 씨’라 적힌 안내판을 들고 느릿하게 걸어가는 호텔 커피숍 직원을 본 적도 있다. ‘특별한 사람’이어서 그랬던 게 아니다. 한때 ‘아무개를 찾는 전화’는 찻집과 음식점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비슷한 때, 각양각색으로 접힌 쪽지가 올망졸망 붙어 있던 약속 장소의 ‘메모판’을 추억하는 이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공중 장소에서 대놓고 이름 부르고, 자신들만의 정보를 ‘공개 메모판’에 버젓이 남기던 때가 있었다. 개인정보에 무심했던 때, 돌이켜보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일이다.
두루누리(유비쿼터스) 시대가 되면서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은 사뭇 달라졌다. 개인정보 가짓수가 늘면서 ‘나’도 여럿으로 드러난다. ‘주민등록번호’와 ‘학번’, ‘사번’은 물론이고 ‘차량번호’가 ‘나’일 때도 있다. 온라인 세상에서 ‘나’는 ‘아이디’와 ‘닉네임’으로 통하고, ‘휴대폰 번호’가 ‘나’를 가리키기도 한다. “1234님의 사연입니다”, “5678님의 신청곡”처럼 전화번호로 청취자를 소개하게 된 지도 제법 되었다.
‘청취자 이름 대신 휴대폰 번호를 부르는 현상’을 다룬 기사를 보았다. 댓글 “‘이동전화 뒷번호 5678을 쓰는 분’으로 호칭하는 것이 좋다”에는 ‘찬성’과 ‘반대’ 의견이 갈렸다. ‘(뒷자리)5678번 쓰시는 분’처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일리 있는 얘기다. “정확한 소개는 ‘뒷자리 5678번 쓰시는 분 중의 하나’이다. 번호 같은 사람이 여럿이기 때문”이라며 “‘시시콜콜하게 다 따져 밝혀야 한다’는 것은 오버”라고 꼬집는 의견도 있다. 라디오 방송 현장의 ‘대세’는 ‘1234님’, ‘5678님’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동전화) (뒷번호) (쓰시는) 1234님’은 괄호 안의 정보를 생략한 것으로 청취자와 ‘합의’되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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