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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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의 상장이 5월로 예정된 듯하다. 필자는 생명보험을 전공한 학자는 아니다. 그런데 어찌하다가 지난 2006년 제3차 생보사 상장 논의 때 이 문제를 조금 가까이서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그 과정은 한마디로 요약해 곡학아세, 아니 곡학아삼성의 극치였다. 계약자의 이익을 돌볼 생각이 전혀 없는 감독당국,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국회 공청회에서 거짓말하는 박사, 사태의 본질에는 관심 없고 그저 도구적인 자문에만 급급한 교수, 사건의 본말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이제 와서 어쩌겠느냐”는 어떤 학계 원로, 증권거래소의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 제35조를 삼성의 입맛대로 개정하는 데 찍소리도 못하고 손 들어준 거래소의 이사들, 그리고 이 문제를 “이제는 보험시장의 발전이라는 전향적인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알랑거리던 언론들. 이것이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있었던 우리 사회의 추악한 모습이다. 그로부터 4년, 생보사 상장 논의가 최초로 제기된 1990년으로부터는 어언 20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삼성의 입맛대로 소원수리가 이루어지려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다. 국민 앞에 했던 약속을 싹 어기고 이건희 회장이 복귀해도 제대로 문제 삼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삼성생명의 상장 문제도 보도에서 찬밥이기는 매한가지다. 기껏 보도가 나와도 삼성차 문제가 해결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 후계 구도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지 하는 주변적인 문제만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삼성생명 상장의 핵심 문제는 생보사의 성장 과정에서 이익과 손실을 주주와 분담했던 유배당 계약자에 대한 대우 문제이다. 특히 삼성의 경우 1990년에 상장을 전제로 하여 실시했던 자산재평가 차익 중 자본계정에 계리하여 향후 계약자 배당이나 회사의 결손 보전에 사용하도록 했던 878억원의 처리 문제가 핵심 중 핵심이다. 이 돈은 지금 기준으로는 별것 아닐지 몰라도 당시로는 큰돈이었고 특히 삼성생명의 자본금과 비교해 볼 때는 엄청난 돈이었다. 삼성생명의 주주가 납입한 자본금은 80년대 내내 10억원 수준에 머무르다가 88년에 30억원의 유상증자를 하여 납입자본금이 80년대 말에는 40억원에 이르렀다. 따라서 자본계정에 계리한 계약자 돈인 878억원은 자산 재평가가 있기 전의 주주 납입자본의 약 22배에 해당한다. 재평가 차익 중 주주 몫을 납입자본금과 합산한 자본금인 1000억원과 비교해 보아도 878억원은 결코 작지 않은 금액이다. 과거 삼성생명이 문자 그대로 계약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회사였다는 단적인 증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귀영화에 눈먼 일부 학자들이 뭐라고 하건, 영혼이 없는 금융감독 당국이 뭐라고 하건, 광고 따기에 급급한 언론들이 뭐라고 하건 이것이 진실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면 이 진실이 삼성생명 상장 과정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자본계정에 계리된 878억원을 유배당 계약자의 출자지분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해 상장차익을 출자 비율에 따라 배분해야 한다. 만일 이들을 주주로 인정하는 것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의도하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경우에는 적어도 금전적인 보상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878억원에 대해서는 상장 차익은커녕 이자조차 한 푼도 줄 필요가 없다는 눈먼 학자들의 보고서 따위는 찢어버려야 마땅하다.
품질의 상징이었던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기술적 결함으로 존망의 기로에 서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세상은 변하는 것이다. 삼성이 현명하다면 이런 인간사의 이치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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