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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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트위터를 통해 반가운 메시지 하나가 날아들었다. “어제 뚝섬에서 청사과분들과 함께 나눔장터 참여했어요. 수익도 냈답니다. ^^” 지난해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연 ‘사회적기업가학교 청년사회혁신가과정’ 교육에 참여했던 청년이다. 스스로 ‘청사과’라고 부르며 진로를 찾던 수강생들은 이렇게 좋은 일과 자립을 동시에 추구하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 아예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사회적 기업으로 옮긴 청년도 있다. 이 메시지를 받자마자 엉뚱하게도 지난 3월16일치 <중앙일보>에 문창극 대기자가 무상급식 정책을 비판하며 쓴 칼럼 ‘공짜 점심은 싫다’가 떠올랐다. 이 글은 “내 아이의 점심을 내가 책임지는 것은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것이 바로 개인의 독립이며 자존”이라며 무상급식을 비판한다. 또 이런 식으로 국가의 역할을 늘리고 개인의 책임을 줄이면 “독립적인 개인은 사라지고 의타적인 인간만이 넘치게 된다”고 전망했다. 내가 만난 미래 세대와는 전혀 맞지 않는 전망이다. 이 글은 한국 사회의 주류가 갖고 있는 사회 운영 원리에 대한 의식이 근본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매우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 열쇳말은 ‘개인의 책임’이다. 무상급식이 개인의 책임을 줄이는 방향으로 사회를 바꿀 것이므로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사실 한국 사회는 이미 자기 책임만을 강조하는 사회다. 내가 공부 못하면 내 탓이다. 내가 해고당해도 내 탓이다. 내 사업이 망하면 그것도 내 탓이다. 내 자식이 점심을 굶어도 그것은 내 탓이다. 이웃과 사회는 동정하고 조금 도와줄 수 있을지언정, 책임의식은 전혀 갖지 않는다. 이는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과거에 내세웠던 ‘오너십 사회’와 비슷하다. 개인의 책임, 경제적 자유, 재산권 보호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각자 경쟁해서 경제력을 확보하고, 그것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라는 의식이다. 한국의 옛 세대가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이해할 만하다. 이들은 자식에게 세 끼 밥을 챙겨주는 것이 너무나 힘겨운 시절을 지냈다. 국가로부터의 복지가 사실상 없던 시대였다. 심지어 개인이 근면히 일하고 저축해서 국가의 부를 늘리는 데 기여하기까지 했다.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맨주먹으로 자식들의 점심을 해결했다. 그게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이제 과거의 논리다. 개인의 자존이 내 자식만의 점심으로부터 오는 시대는 지났다. 미래 세대는 이웃의 점심까지 함께 챙겨야 자부심이 생기는 세대다. 최소한의 인권과 복지는 사회가 지켜주는, 품격 있는 국가로부터 자존을 느끼는 세대다. ‘청사과’의 청년들을 보면 안다. 그들은 안락한 대기업에서 자기 점심을 책임지는 데서 만족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뛰쳐나와 남들의 점심을 함께 생각하는 삶을 살겠다고 나섰다. 기업을 하더라도, 사회적 의미가 있는 사업을 벌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공짜 점심을 제공하면 누군가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설교할 필요도 없다. 미래 세대는 국가가 제공하는 것이 공짜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지 않다. 국가에 의존해 살아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 사회에 대해 자신이 지분을 가진 이해관계자라고 생각하며 당당히 권리를 주장한다. 독립을 추구하며 동시에 이웃에 대해 기꺼이 사회적 책임을 지려 한다. 미래 사회는 더 이상 정글이 아닐 것이다. 개인도 조직도 ‘사회적 책임’이라는 원리 아래 공동체의 일원으로 지분을 갖고 존재하는 게 미래 사회의 모습이다. 미래 세대의 자존심은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나온다. ‘나만의 도시락’이 아니라 ‘함께하는 식탁’이 미래의 점심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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