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2.03 20:30
수정 : 2010.02.03 20:30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
최근 웅진그룹이 계열사 웅진홈케어의 홈클리닝 사업부를 청소 전문 사회적기업인 함께일하는세상에 무상으로 양도했다. 웅진은 2007년부터 침대매트리스, 싱크대, 배수구 등을 소독하는 이 사업을 운영했다. 그런데 적자가 250억여원까지 쌓이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그런데 영리 대기업이 포기한 이 사업을 작은 사회적기업이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함께일하는세상은 이 사업부 직원 전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고정급을 지급했다. 웅진에서는 고용되지 않은 채 성과에 따라 보수를 받던 사람들이었다.
이런 결정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동안의 경험 덕이다. 대부분의 청소 일자리가 매우 불안정한 것과 대조적으로, 함께일하는세상은 사업 초기부터 매우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고 급여 수준도 시장 평균보다 높였다.
이렇게 설계하자 서비스 품질도 함께 높아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객의 신뢰가 쌓여갔다. 높은 가격을 치르고라도 이곳에서 서비스를 받겠다는 고객이 늘어나면서 경영이 안정됐다.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영리기업보다, 안정적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사회적기업이 시장에서 더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업의 방법을 활용하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이 법제화한 지 2년 반이 지났다. 한번쯤 명암을 짚어볼 시점이다.
정부가 지원정책을 내놓으면서, 국민들 사이에 이 새로운 현상이 많이 알려지고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 사회적기업은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했는가?’라는 질문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노동부는 사회적기업이 시장에서 돈을 벌어와서 자립하라는 말만 반복한다. 명백히 정부가 해야 할 공공사업이 사회적기업에 던져져 시장논리에 맡겨지기도 한다. 일자리 수 말고는 사회적 성과를 따지는 지표조차 제대로 개발되어 있지 않다. 이렇다 보니 많은 사회적기업이 세상을 혁신하는 곳이 아니라 근근이 먹고사는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인식과 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세상을 바꾼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의 저자 존 엘킹턴은 사회적기업을 세 가지로 정의한다. 첫째는 사회적 비즈니스다. 함께일하는세상처럼 시장에서 돈을 벌면서 사회적 가치도 지키는 곳이다. 협동조합 같은 곳도 여기 포함된다. 둘째, 혼합(hybrid) 비영리기관이다. 와이엠시에이나 아름다운가게처럼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아 매출도 일으키지만 기부도 받는 곳이다. 셋째, 혁신적(leveraged) 비영리기관이다. 희망제작소나 월드비전처럼 혁신적 모델을 도입해 자원봉사와 기부 등 외부 자원을 잘 동원하는 곳이다.
한국 정책당국은 매우 좁은 의미의 사회적 비즈니스만 인정한다. 그것도 정부가 직접 인증을 해준다. 정부 인증 없는 곳은 ‘사회적기업’이라는 이름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규제한다.
이제 사회적기업 제도 전반을 ‘사회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인증제도 역시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기업의 개념을 넓혀 사회적 목적을 가진 비영리기관을 폭넓게 인정하되, 인건비 등의 직접지원 대상은 공공성이 강한 곳으로 한정하는 것이 옳다. 주식회사 형태의 사회적기업의 경우 주주에 대한 이윤배분을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
사회적기업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새롭게 형성되는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이다. 좁은 접근법으로는 성공시키기 어렵다. 새로운 경제현상 전체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옮아가야 한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