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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06 22:06 수정 : 2010.01.06 22:06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2010년 첫 출근날, 아침부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눈에 갇혀 있다는, 차가 막힌다는, 조금 늦는다는 연구원들의 전화였다. 서울 전체가 마비 상태였다.

기업에서도 시무식을 연기하는 일이 잇따랐다. 국무회의에 지각하는 장관들도 있었다고 한다. 출근을 위해 전쟁을 치르던 우리 사회를 관찰하면서 생각했다. 하루쯤 모두가 쉬어버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날 많은 일터에서는 늦게 출근한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추위에 시달린 몸을 추스르며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서울시를 탓하고, 기상청을 비난하기도 하면서, 시간이 쉽게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다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교통지옥을 피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비효율적인 하루를 미리 예상하면서도, 쉽게 ‘휴무’를 결정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휴식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출근시간도 지키지 못하고 교통지옥에 갇힌 채로, 그날 꼭 일터로 향해야만 했을까? 누군가 ‘오늘은 그냥 모두 쉬자’고 이야기할 수 없었을까? 그런데 그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한국인 삶의 일터 종속성은 엄청난 수준이다. 특히 의사결정권을 가진 엘리트의 일터 종속성은 훨씬 높다. 그러다 보니 사회 전체가 ‘과로’를 미덕으로 삼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운영된다. 고용되지 않은 젊은이는 아무리 진취적으로 미래를 설계하며 자원봉사와 문화활동을 하고 있어도, 늘 걱정거리로만 취급된다. 일찍 출근해 일찍 퇴근하는 ‘탄력근무시간제’ 같은 혁신적 인사제도는 ‘근로시간 연장’으로 쉽게 둔갑한다.

그러나 최근 경제학은 과로의 미덕을 일방적으로 예찬하지는 않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1990년대 중반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경제 성장은 노동 투입에 과도하게 의존했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사회문화 시스템과 인적자원의 질 등을 고려한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분이 매우 낮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했다. 지속적 성장에는 노동의 추가 투입보다는 성찰과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강원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가 쓴 책 <신상품의 경제학>은 다른 관점에서 휴식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경제의 질적 도약에는 메가톤급 신상품 창출이 필요한데, 이는 기존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으로부터가 아니라 쉬고 있는 ‘휴무노동’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휴식’으로부터 혁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공휴일과 주말이 겹칠 때 공휴일을 미뤄 쉬게 하는 대체휴일 논의가 한창이다. 기업은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생산에 차질을 빚거나 인건비가 늘어난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좀더 큰 전략적 견지에서 보면, 휴식은 산업이나 기업의 제품이나 생산과정을 혁신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혁신과 신상품 개발이 필요할 때는 오히려 더 많은 휴식이 필요할 것이다. 구글은 직원 노동시간의 20%를 일과 관련 없는 ‘딴짓’을 시키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 않은가?

도심 폭설과 같은 재난사태 대비책도, 돈을 들여 장비를 사고 조직을 만들어 시민의 출근을 돕는 방향으로 짤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 마음의 부담 없이 함께 쉬도록 하는 대응 프로세스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한국 경제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려면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는 질을 높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경제 선진화란, 노동 투입이 성장의 동력이던 시대가 상상력과 성찰을 통한 총요소생산성 개선이 더 중요한 시대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휴식은 한국 경제 도약에 필요한 자산이자,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상상력의 밑천이기도 하다. 과로사회는 선진사회가 아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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