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23 21:56
수정 : 2009.12.23 21:56
|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부 교수
|
미국의 경제학자인 아먼 알키안과 해럴드 뎀세츠는 1972년 미국경제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 “타이피스트에게 이 서류가 아니라 저 서류를 타이핑하라는 것과 식료품가게 주인에게 이 회사 빵이 아니라 저 회사 참치를 팔라는 요구는 내용상 동일하다”고 주장하였다. 간단히 말해 타이피스트의 노동력을 거래하는 고용관계나 참치캔을 사고파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이며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값을 치르고 그 대가로 참치캔을 받는 행위는 임금을 지급하고 노동력을 제공받는 행위와 똑같은 것이다. 참치캔이 너무 비싸거나 품질이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사면 그만’이고, 반대로 구매자가 너무 싼값을 요구하면 가게 주인은 ‘안 팔면 그만’이다. 이것이 바로 참치캔의 세계이다!
최근 공기업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단체협약 폐지가 도미노처럼 번지더니 모든 수준과 방향에서 노동에 대한 공격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그 선봉에 섰던 것이 이른바 “합리적인 노동정책 개발과 노동문제에 관한 국민 일반의 인식 제고”를 목적으로 한다는 한국노동연구원의 경제학자 출신 (전임)연구원장이었다. 그분이 어디에선가 했다는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거나 “노동3권을 헌법에서 빼야 한다”는 발언은 본인 스스로도 어정쩡하게 철회한 해프닝쯤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이른바 시카고학파라 불리는 경제학자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돌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파 차원의 소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공무원노조의 민중의례가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므로 금지하는 행위는 참치캔의 품위 없는 디자인을 문제삼아 구입을 거부하는 셈이고, 월급 더 받는 노동자는 덜 받는 노동자 생각해서 파업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비싼 참치캔은 안 사겠다는 소비자주권의 표현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그들이 꿈꾸는 것은 완벽한 참치캔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참치캔을 사다가 찌개를 끓여 먹건 날로 먹건 심지어 강아지를 주어버리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타이피스트에게 어떤 일을 시키느냐 하는 것은 다르다. <자본주의 이해하기>(새뮤얼 볼스 외 지음)라는 책의 내용을 약간 바꾸어 인용하자면, 참치가 먹히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법은 결코 없지만 노동자는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계약거래이면서도 사람 사이의 관계는 가격이나 수요공급의 논리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안 사면 그만”이나 “안 팔면 그만”이 그대로 통용되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보수언론이 왜곡하듯이, 이런 주장이 모든 개별 사안에서 항상 노동이 옳고 자본은 틀리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핵심은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그저 참치캔을 사고파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맞부딪치는 관계로 보는 데에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자본주의인 것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관계가 있기 때문인바, 이를 참치캔의 세계로 바꾸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것이다.
연구원장의 발언 정도야 유사시에는 ‘개인적 소신’이라며 물러서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제도’보다는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한국 사회에서는, 안정적인 높은 임금을 받는 공기업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안 된다는 등의 최고권력자의 발언은 그 추종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행동지침이 되며, 그 반대편에 놓인 이들에게는 경고를 넘어선 협박이 된다.
그래도 한국 문파의 본류쯤 되는 미국의 알키안은 한 수 위였다. 이십여년 지나 자신의 입장을 부분적으로나마 수정하였기 때문이다.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부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