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09 21:29
수정 : 2009.12.0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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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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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8일,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창조경영’이라는 화두를 꺼낸다. 두바이의 삼성물산이 건설중이던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 현장에서였다. 그는 “셰이크 무하마드가 두바이를 세계가 주목하는 발전모델로 변화시켰듯이 우리도 … 창조경영에 힘써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은 2007년 창조경영을 그룹 전체 경영 화두로 삼는다. 이 화두는 삼성뿐 아니라 국내 재계 전체, 아니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구본무 엘지 회장도 창조와 창의를 강조했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도 두바이를 방문했다. ‘두바이’라는 이름은 창조경영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사실 두바이의 성공은 놀라웠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7성급 호텔을 짓고, 세계 최고층 빌딩을 세우고, 인공섬을 조성하고 쇼핑몰과 실내스키장까지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으로 전세계 투자자들을 매혹시켜 자금을 끌어들였다. 모두 셰이크 무하마드 국왕의 창조적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 두바이의 신화가 지금 무너지고 있다. 두바이월드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 뒤, 다국적 투자자들은 너도나도 거액의 손실을 본 뒤 시장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주요 프로젝트 상당수가 멈춰선 상태다. 신화는 심판의 대상이 됐다.
두바이식 창조경영은 세 가지 치명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첫째는 사람이 아닌 콘크리트에 그 기반이 있었다는 것이다. 부동산 개발로 지어낸 웅장함, 그 신기루에 현혹된 투자자로부터 낸 빚으로 잔치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는 창조경영의 주체였다. 최고경영자인 셰이크 무하마드 국왕 혼자 창조의 주체였다. 한 사람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수십만명이 비창조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모델이었다. 국왕의 기획대로 도시가 만들어지고 투자가 유치되는 동안, 외국 출신 노동자들은 투표권도 없는 저임금 용병으로 살아가야 했다.
셋째는 기업과 사회의 관계였다. 한때 두바이의 무세금, 무분규, 무제한 송금 등 ‘3무’ 정책은 한국 재계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기능도, 노동 3권도, 금융규제도 대부분 선진국에서 건전한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도입한 장치다. 이런 장치를 통해 기업이나 금융은 사회와 소통한다. 두바이는 이런 소통을 무시했던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빌 게이츠가 내세운 ‘창조적 자본주의’의 핵심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또 창조경영의 핵심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하고,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어야 한다. 최근 만난 미국 아쇼카의 빌 드레이턴 회장은 “조직의 모든 사람이 변화창조자가 되어야 미래 경쟁력을 갖는다”고 역설했다. 사실 꼭대기부터 말단까지 모두가 창조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라야 미래 경제에서는 경쟁력이 있다. 한 사람의 상상력이 모두를 움직이는 두바이 모델이 종말에 다다른 것은 그런 경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창조에는 위험이 따른다. 실패했다는 사실만으로 지나치게 비난하는 것도 곤란하다. 실패 역시 사회의 자산이다. 남긴 자산의 내용도 중요하다. 사막 위의 콘크리트 흉물을 남길 것인지, 아니면 사람을 남길 것인지를 고민할 시점이다. 인재를 키워 놓았다면, 그 기업이 실패하더라도, 텅 빈 건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자산이 그 사회에 남는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민주적이고, 사회와 소통하는, 그런 창조경영을 재창조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두바이 사태에 놀라 ‘창조경영’이라는 값진 화두까지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되어 하는 이야기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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