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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07 21:52 수정 : 2009.10.07 21:52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

한국 경제의 빠른 회복을 낙관하는 견해가 내외적으로 거듭 유포되고 있고 실제로 조금씩 경제가 호전되는 듯도 하다. 그 가운데 현재의 세계경제가 사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에 있는지를 다시 상기시키는 보도가 있었다.

영국 한 일간지에 따르면, 아랍국들이 중국, 러시아, 일본 및 프랑스와 함께 석유결제 통화를 엔, 위안, 유로 및 금을 포함한 통화 바스켓으로 대체하자는 논의를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일결제 통화를 다변화해야겠다는 아랍권의 언급은 미국 금융기관들의 손실상각 보도로 달러 가치가 급락했던 2007년 말에도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심화되어 달러가 안전자산으로서 가치를 어느 정도 회복하자 이 논의는 수면 아래로 잠복했었는데, 올해 들어 다시 몇 차례 흘러 나돈 바 있었다. 이번에도 말만 하다 말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달러 급락에 따른 엔화 강세로 수출에 급격한 타격을 받게 되자 불과 수주 전에 달러 지지 발언을 해야 했던 일본이 여기에 동참했다는 것은 이들 나라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일부라도 드러내 준다.

2004년에 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인 로런스 서머스는 당시 달러화가 처한 상황을 두고 “금융 붕괴의 공포 때문에 유지되는 균형”(balance of financial terror)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공멸의 공포 때문에 핵무기가 핵전쟁을 억제한다는 논리와 같은 것인데, 이미 보유하고 있는 달러 표시 자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달러 가치를 떠받쳐야 하는 중국 같은 나라들의 고민을 잘 표현했다.

이 문제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개발도상국과 신흥공업국들이 생산과 복지에 투자되어야 할 재원을 엉뚱하게 달러채권에 묻어두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비용이 매년 이들 국내총생산(GDP)의 1%에 이른다는 계산도 나온 적이 있었지만, 중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2007년께의 추산으로 중국은 국내총생산의 3분의 1에 이르는 수조달러의 달러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막대한 자산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달러자산을 끝없이 사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중국이 안 사면 달러가 폭락할 테니까. 당연히 중국은 겉으로는 달러 지위를 지지해야 하고 속으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달러 위에 세워진 국제금융질서를 지탱하던 “공포의 균형”이 더는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러면 그 균형의 조정, 이른바 ‘결산의 날’은 어떤 모습일까.

대략 상상하자면 미-중 간의 불균형이 조정되는 방식은 크게 두어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예전 1980년대 중반에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이 달러 가치 하락의 부담을 군말 없이 져주는 경우이다. 미국의 이익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길이다. 만약 이게 별로 현실성이 없다면 국제적 협조에 의해 계획적이고 점진적으로 달러 가치를 조정하든가 아니면 달러 가치의 격렬한 급변동을 초래하는 두 가지 길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이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월가의 금융자본들이 누려온 기득권과 이익을 타파하는 조처를 피하려 할수록 두 번째 길의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 왜냐하면 미국이 금융지배와 금융이익독점을 포기하지 않고는 점진적인 달러 가치 조정을 위한 국제적 협조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의 비밀회동이 동시다발적으로 반복되면서 금융위기가 재발되는 형태를 띨 가능성이 엿보인다. 정부가 일부 경제지표의 개선이나 지지율 회복에 신나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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