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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09 19:33 수정 : 2009.09.09 19:33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

한국 경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풍성하다. “한국 경제의 위기가 끝나면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가장 빨리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 평가 현저히 개선되었다” 등의 기사가 내외신을 장식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새로운 거품에 대한 경고마저 나오고 있다. 백화점 명품 매출을 중심으로 소비심리가 살아난다고 하며, 한 국책연구소는 올해 성장률 전망을 지난 5월 전망치보다 1.6%나 높게 조정했다. 미국의 가장 큰 소비시장이라는 티브이, 휴대전화, 자동차 시장 등에서 한국 업체의 시장셰어가 급증해 티브이와 휴대전화에서는 1위로 올라섰고, 자동차는 역사적 판매량을 경신하고 있다 한다. 한국의 대표 재벌 기업들의 성과가 눈부시다. 급기야 증권가에서는 “한국, 위기를 즐겨라!”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인구에 회자될 정도이다.

반면 아주 오랫동안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던 엥겔계수(Engel’s coefficient)가 다시 관심을 끈다. 가계의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하는 엥겔계수는 종종 빈곤의 지표로 사용되었다. 이 비중이 클수록 상대적으로 빈곤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상반기 기준으로 2001년 이후 8년 만에 최고치에 이르렀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식료품비 지출은 9.1% 증가한 결과이다.

올해 들어 식료품 가격 상승률은 1~8월 중 9.5%로 깜짝 놀랄 만큼 높았다. 그것도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고 20~30% 상승률을 보인 품목이 수두룩하다. 가히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때를 떠올릴 만하다.

물론 당국의 설명대로라면 환율 급등에 따른 수입가격 인상이나 가뭄 때문에 나타난 이상현상이고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 그러나 환율 문제가 단기간에 해소될 것 같지도 않고, 기후변화 속에서 투기 대상이 되어 버린 국제 식료품 가격의 불안정이 구조적으로 심화될 것이라는 경고도 심상치 않다. 우리는 이미 시장원리와 효율성을 이유로 농업을 포기해 가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 경기회복에 따른 원자재·농산물 가격의 급등 전망은 또 어떤가? 여기다가 한국의 식품물가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점도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생필품 가격의 불안이 결코 일시적인 이상현상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이유들이다.

급증하는 개인회생이나 파산신청 건수까지 함께 생각하면 대다수 서민이 겪고 있는 삶의 고단함이야 표현하기 어려운 지경일 것이다. 따라서 당국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0%에 불과해서 별문제가 없다거나, 생필품 가격 상승은 일시적일 것이니 별 의미를 둘 필요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당국의 시각과 서민의 삶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다수 서민은 이미 당국자들이 그리도 우려하던 ‘불황 속의 물가상승’(스태그네이션)을 몸으로 겪고 있는 것이다.

현재 위기를 즐길 수 있는 한국 경제와 실질 식료품비 지출마저 줄이고 있는 한국 경제, 이 둘 사이의 극단적인 괴리가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다. 1997년 위기 때 급격히 확대된 양극화가 해소되지 못한 채 이번 위기로 더욱 악화되어 고착화될 위험성이 높다. 세계 몇 등이라는 경제강국의 구호 뒤에서 소리 없이 빈곤화가 진행되고 있다.

내년도 예산에 복지예산 규모를 확대한다고 한다. 그 내용과 기대효과는 아직 잘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일단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의식주라는 국민기초생활의 안정을 확보해 놓지 못한다면 복지예산 증액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꼴이 되지 않겠는가.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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