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7.22 20:46
수정 : 2009.07.2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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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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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경제학자인 레스터 서로 교수의 강의를 들은 일이 있다. 한번은 서로 교수가 강의실에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풀리지 않는 퍼즐이야. 미국 의료의 질이 높다고 하는데, 효율성을 따지면 미국이 늘 비판하는 유럽 국가보다 엄청나게 뒤떨어지거든. 정부 재정도 몇 배나 더 들어가고 있다고.”
제주도의회에서 영리병원 설립안을 통과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그때 그 장면이 떠올랐다. 미국의 영리병원 비중은 18%나 되고, 세계적 수준의 의료진과 설비를 자랑한다. 그런데 그 나라를 대표하는 주류 경제학자가 왜 그렇게 한숨을 지었을까? 한숨의 대상이 된 영리법인 중심 의료시스템을 왜 우리 사회에서는 그리도 동경하는 것일까?
한국에도 영리병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경쟁으로 의료의 질을 높인다. 둘째,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병원 경영을 정상화한다. 셋째, 외국이나 대기업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의료계 전체를 질적으로 도약시킨다.
한마디로 ‘주식회사’로 대표되는 영리법인에 대한 오해와 환상이 이런 동경을 낳은 것이다.
우선 흔한 오해부터 풀자. 영리법인과 비영리법인의 차이는 잉여의 분배 방법이다. 경영 효율성이 아니다. 비영리법인이라고 효과적으로 경영을 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제대로 보수를 주고 전문가를 고용해 제대로 경영을 하면 된다. 사업을 벌여 돈을 벌지 말라는 법도 없다. 서비스를 잘 구성해 고객을 찾아 팔면 된다.
차이는 단지 배분 시스템에 있다. 주식회사는 잉여가 생기면 궁극적으로는 주주에게 배분하는 게 원칙이다. 비영리법인은 잉여가 생겨도 소유주에게 배분하지 않고, 법인의 사명을 위해 사용한다. 설립자도 후원자도 이사진도 직원도 비영리법인의 잉여를 가져가지 못한다.
그러니 의료의 질이나 경영 수준 때문에 영리병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처음부터 오해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재정난에 빠진 병원은 비영리법인이어서가 아니라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영리법인이 되면 경영이 정상화되고 적자가 메워질까? 실제 미국의 경우 영리병원의 재정 상태는 들쭉날쭉이고, 비영리병원이 오히려 안정적이라고 한다. 주식회사라고 해서 돈을 벌어올 날고 기는 재주는 없다. 비영리법인도 경영만 잘하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다만 영리법인이 외부 투자 받기는 수월할 수 있다. 투자자에게 큰돈을 단기에 벌어갈 수 있다는 강력한 동기를 줄 수 있어서다. 그런데 이런 성격의 자금이 필요한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외부 투자자가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세운 뒤 빠르게 잉여를 챙겨 되가져간다면 의사나 환자들이 행복할까? 멀리 갈 것도 없다. 쌍용자동차가 그런 외국인 투자자를 맞았다가 파국을 맞은 사례다.
우리는 흔히 영리법인이 주는 이윤동기가 자동으로 생산성을 높여준다는 환상을 갖는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이윤동기는 실제 성과를 높이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투자은행들과 제너럴 모터스 같은 미국 대표 기업들이 몰락하고, 잭 웰치가 ‘주주가치만을 위한 경영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우리 경제에 부족한 것은 이윤이 아니라 사명이다. 사명중심 조직을 통해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기업을 육성하고, 비영리조직을 지원하는 일이 이런 맥락에서다. 피터 드러커도 말년에 비영리조직의 경영에 관심을 기울이며 ‘미래에는 사명중심 조직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는 돈이 아니라 행복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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