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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17 21:14 수정 : 2009.06.17 21:14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

경기가 조기에 회복할 것이라는 주장이 늘고 있다. 금융시장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고, 1분기 국내성장률이 전기 대비 플러스로 돌아섰다. 브이(V)자 반등에 대한 기대도 제시되었다. 이러한 기대를 뒷받침하는 솔깃한 논거는 최근 대기업의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반도체 시장의 치킨게임에서 한국 업체가 승리한 듯 보이고, 자동차 업체는 미국 시장의 시장 점유율을 위기 이전보다 두 배 높였다. 조선업의 구조조정에 따라 한국 업체의 시장지배력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들 대기업의 상황에 눈높이를 맞추면 세계 경제의 위기 상황과는 다르게 한국 경제를 바라볼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 거시적으로 한국 경제를 보면 낙관론의 설득력은 떨어진다. 정책적인 유동성 팽창 효과나 환율 효과를 제외하면 빠른 경기회복을 낙관할 근거는 약하다. 투자나 가동률, 고용 지표 등을 통해서는 한국 경제의 질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세계 경제와 미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눈을 돌리면 낙관론의 근거는 더욱 취약해진다. 현재 미국은 금융시장이 마비되어 돈이 돌지 않는 상황은 일부 수습해 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반면에 위기의 새로운 국면, 즉 소비 위축과 투자 위축으로 인해 거꾸로 기업이 자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용 위기가 소비 위축과 빈곤 증가를 가져오고 이 가운데 미국의 가계는 저축을 늘리고 부채를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가계소득의 별다른 증가 없이 민간소비를 지탱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가계부채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2.5조달러에 이르렀던 가계 차입이 2008년에는 1.4조달러 규모로 위축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미국의 가계부채가 단기간에 해소될 수 있다거나 아니면 중국 내수시장이 미국 시장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한 단기적으로 한국 수출과 경제의 빠른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모면하려고 각국 정부가 풀어놓은 유동성 팽창의 규모가 워낙 막대하다 보니 누구나 향후의 유동성 관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정부가 부실 금융기관의 지원과 관련해서 약속해 놓은 액수가 모두 실행된다면,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2차 세계대전 때의 미국 정부지출을 훨씬 웃돌 정도이다. 머잖아 막대한 재정 지출과 통화 완화 정책을 통해 늘어난 유동성을 다시 조이는 문제를 두고 논의가 일어날 것은 당연하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금융시장의 출렁거림을 우려해 얼른 진화되기는 했지만 지난주 열린 주요 8개국 재무장관 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된 바 있었다.

앞으로 곧 유동성의 회수가 불가피해지면서도, 동시에 투자와 소비 위축이 지속되는 상황(reflation)이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어려울 수는 있으나 해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위기를 넘긴 금융시장으로부터 유동성을 회수하면서도, 획기적인 분배 개선을 통해 다수 가계의 소득을 유지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이것이 미국이 부채를 축소하면서도 소비 위축을 일부라도 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실제 이 비슷한 일은 대공황과 2차 대전을 거치면서 고용 안정, 실질임금 확보, 복지 제도화 등의 수단을 통해 미국과 서구에서 실행되었던 일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도 과잉유동성 회수 계획은 세워야겠지만 좀더 적극적인 소득분배 계획과 함께 새로운 정책 구상에 들어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2차 대전 중에 획기적인 분배 개선 계획을 구상하여 전후의 사회경제적 안정을 도모했던 것이 처칠의 보수당 정부였다는 점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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