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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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경제
지난 2005년 10월 필자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과 관련하여 세 번의 기적을 평가하는 칼럼을 어떤 언론매체에 기고한 일이 있다. 첫 번째 기적은 2000년 5월에 법학 교수 43인이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에버랜드의 이사 및 감사 전원과 관련 계열사 대표이사 등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던 것이다. 이 고발이 없었더라면 이 사건은 조용하게 묻혀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기적은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기 직전인 2003년 12월에 검찰이 이건희 회장을 제외한 에버랜드 임원 2명을 기소했던 것이다. 비록 사건의 핵심인물로 간주되던 이건희 회장이 제외되기는 했으나 이 기소를 통해 이 사건은 살아남았다. 마지막 기적은 일심 판결이었다. 2005년 10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이 전환사채가 헐값으로 발행되어 회사에 손실이 발생했다는 점을 들어 에버랜드 임원 2명에게 업무상배임죄를 선고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꺼질 듯 꺼질 듯 흔들리면서도 학계, 검찰, 하급심 판사들이 일구어낸 이 세 번의 기적에 의해 명맥을 유지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화룡점정이었다. 그리고 그 임무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대법원에 떨어졌다. 돌이켜보면 대법원은 세 번의 기적을 만들어낸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편한 위치에 있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교수들을 불러모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조직의 논리를 무시하기 어려운 검찰도 아니고, 기존 판례나 법률 관행에 얽매여야 하는 하급심 판사도 아니기 때문이다. 신분이 보장되어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필요하다면 과거의 판례를 수정하는 새로운 판례나 사법관행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 대법원이다. 특히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 비자금 사건에 의해 삼성 특검이 있었고, 그에 따라 2003년에 검찰이 기소하지 못했던 이건희 회장까지 기소되는 등 사회적 분위기도 부담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어렵게 어렵게 이어져 온 세 번의 기적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사실관계를 보지 않고 형식논리만을 따른 판결이었다. 아니 형식논리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외국에 나가 있던 이사가 마치 실제로 참석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서 회의 정족수도 채우지 못한 이사회의 결의가 왜 유효한지 보통사람들의 형식논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회의 목적이 이재용 현 삼성전자 전무에게 헐값에 경영권을 넘기기 위함이라는 사실관계를 봐야 할 때는 형식상의 주주배정이 있었다는 점에만 눈을 부릅뜨고, 형식논리에 의거해 이사회 결의가 무효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눈을 질끈 감아 버린 대법원의 판결은 도대체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법은 사회의 거울이다. 특히 대법원이 의지해야 하는 법은 더욱 그러하다. 대법원은 법전에 있는 문언의 의미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테크니션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과 앞으로 나아갈 바를 반영하여 우리 사회가 준수해야 할 규범을 새롭게 발견하는 곳이다. 그래서 대법원은 필요하다면 동일한 법문을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법원 해석은 우리 사회를 어디로 이끄는 것인가. 정족수도 차지 않은 이사회를 열어 형식상의 주주배정만 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회로 이끄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기업지배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무슨 유효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번 판결은 결국 우리나라 기업의 투명성을 외환위기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대법원은 삼성 일가를 구하면서 우리 기업 전체를 저버리고 말았다.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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