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27 21:30
수정 : 2009.05.27 21:30
|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
|
삶과 경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언론과 정치권이 이구동성으로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새삼스럽다. 또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보복과 극단의 악다구니”를 개탄하고, 어떤 이들은 대통령 권력문화의 부정적 유산과 정권교체 과정의 정치적 미성숙을 비판한다. 뒤이어 언제나 그렇듯이 산 자에게 남겨진 과제를 언급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왜 화합과 통합이 그리 어려운가, 왜 갈등이 너무 자주 극단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가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실천적 제안은 매우 부족하다. 필요할 때마다 성찰과 반성을 외치지만 개인적 자성만으로 의미 있는 사회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요원하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거대한 추모의 흐름은 그가 남긴 과제가 개인 노무현의 것이 아니라, 그가 상징했던 한 시대가 남긴 사회적 과제임을 드러내 준다. 고인의 공과야 훗날 평가할 일이지만, 어떻게 평가하더라도 그가 민주화 시대의 한 상징이었음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과제의 으뜸은 미처 마무리되지 못한 민주화 시대의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그가 상징했던 민주화의 시대적 약속이 형식적인 정치적 절차에 그쳐 버린 채, 국민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 안타까움을 기나긴 추모 행렬에서 읽는 것이 무리한 것이 아니다. 그 안타까움의 실체는 우리의 삶이 서로 뺏고 뺏기는 관계가 아니고, 좀 덜 불평등하고, 조금 더 공동이익을 나누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그 희망이 좌절된 데 대한 회한과 여한이다.
진정으로 “화합과 통합”이 남겨진 과제라고 공감한다면, 우리 삶의 실질적 조건이 이에 부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금은 더 서로 소통할 수 있고, 조금은 덜 악써도 되고, 조금은 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삶의 조건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시장의 불확실성과 서로간의 맹목적 경쟁관계에 내던져지는 한, 사는 것이 온통 전쟁터가 되고 만다. 여기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긴장에서 헤어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재산이 좀 있건 없건 각자 기준에서는 매한가지다. 내 생활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과 긴장 속에서 화합과 통합, 소통과 양보의 여유는 성인(聖人)이 아닌 다음에야 때로는 사치일 수도 있다.
삶의 일부만이라도 전쟁터에서 벗어나게 사회의 제도와 운영 방식을 시급하게 수정해야 한다. 우선 건강과 노후만이라도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 좀 물러나 남의 사정을 듣더라도 내가 당장 죽을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달포쯤 지난 일이지만 한국의 가계 운영비 가운데 시장에서 얻는 소득의 비중이 92.1%에 달한다는 자료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68.1%이고, 그중 가장 낮은 스웨덴이 51.5%, 가장 높은 축에 드는 미국이 83%라고 했다. 나머지 소득은 실업수당, 보육지원금, 기초노령연금, 건강보험, 기타 정부의 공공서비스 등으로 채워진다. 경쟁에 져 도태되기라도 하면 스웨덴에서는 생활비의 절반 정도가 유지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바로 죽을 판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가 의료 서비스를 산업화하고 시장 영역을 확대하려는 ‘의료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상황이다. 정치권이 당장에라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도 내놓고 시작하지 않는 한 통합과 화합은 쓸데없는 공염불이지 싶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