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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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경제
4월30일 한밤중의 국회는 별천지였다. 여당이 사실상의 날치기로 본회의까지 힘겹게 끌고 온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두 차례나 자기 손으로 폐기처분했기 때문이다. 어제는 야당 대표가 이 과정에서 여당이 다른 개정안을 슬쩍 ‘끼워넣기’ 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함으로써 이 문제는 점입가경의 경지에 이르렀다. 과연 4월30일 밤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멀게는 금산법 파동이 한창이던 2005년, 가깝게는 지난해 10월13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문제의 핵심은 삼성이다. 삼성은 주지하듯이 금융회사와 일반 제조업체가 서로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 있듯 긴밀하게 연관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방원이 보기에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 있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는지 모르지만, 금융회사와 일반 제조업체가 얽혀 있는 것은 엄연히 국법 위반이다.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도 국법 위반이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도 국법 위반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삼성을 봐주었다. 금산법을 개정하면서 친절하게도 부칙에 오직 삼성에만 적용되는 예외조항을 따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금산법 부칙은 삼성에 약간의 ‘시간 벌기’만을 허용해 주었을 뿐이다. 삼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를 법에 맞게 바꾸든지, 법을 지배구조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 사태는 그 후 법을 바꾸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지난해 10월13일, 금융위는 같은 날 같은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개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한 개정안은 은행법 개정안처럼 은행지주회사에 대한 산업자본의 소유 제한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다른 개정안은 금융지주회사가 산업자본을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은 현재의 지배구조를 합법적으로 유지·확장할 수 있다. 그 후 이 두 개정안은 국무회의 통과라는 정상적인 절차를 생략한 채 의원입법이라는 편법의 형태로 국회로 넘어갔다. 그중 은행 소유 제한과 관련한 개정안은 박종희 의원 발의로, 삼성 특혜 시비가 있는 자회사 소유 완화 개정안은 공성진 의원 발의로 제안되었다. 박종희 의원안은 올해 2월 내내 열띤 논쟁거리가 된 후, 지난 3월3일 정무위원장인 한나라당의 김영선 의원이 야당의 격렬한 반대 속에서 날치기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방식으로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삼성 특혜 시비가 있었던 공성진 의원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논의를 비껴갔다. 많은 사람들은 이 개정안을 박종희 의원안과 잘 구별하지도 못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 4월24일 정무위를 통과한 후 4월27일이 되어서야 법사위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안건으로 상정되지도 않았고 당연히 심의도 없었다. 법사위가 박종희 의원안을 4월30일 통과시킨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그 후의 사태는 최근에 밝혀진 바와 같다. 한나라당이 애초 본회의에 제출한 안에는 박종희 의원안에 공성진 의원안이 추가된 상태였고, 야당의 문제제기에 의해 이것이 삭제된 후 표결 처리 과정에서 수정안도 원안도 모두 부결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세계는 이번 금융위기의 아픔을 교훈 삼아 체제적 위기를 야기할 수 있는 거대 경제주체에 대한 규제 방안의 모색에 골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집권 여당은 이미 존재하는 공룡을 통제하기는커녕 더 큰 공룡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것도 제대로 된 여론 수렴이나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도 없이. 이것이 경제 살리기인가.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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