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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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경제
4월 중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약속했던 두 가지 획기적인 일을 실행에 옮겼다. 우선 백악관에 ‘사회혁신실’(Office of Social Innovation)을 설치하고, 미국진보센터와 구글을 거친 인도계 미국인 소널 샤를 책임자로 임명했다. 또 의회를 통과한 ‘미국봉사법’(Serve America Act)에 서명했다. 이 두 가지 행동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철학인 오바마노믹스의 밑그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내용은 세 가지 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정부가 나서서 있는 곳에서 덜어 없는 곳으로 이전하는 ‘분배’ 정책이다. 최근 발표한 향후 10년 예산계획에서는, 10년간 소득 상위 5% 부유층과 석유회사 등의 대기업에 1조달러(약 1300조원)의 세금을 추가 부담시키기로 했다. 이 재원은 의료보험과 공교육 등 공공복지에 사용된다. 둘째, ‘빌려서 쓰는 경제’에서 ‘벌어서 모으는 경제’로 전환하는 정책이다. 오랫동안 미국 경제의 동력은 국채 발행과 주택담보대출에 기댄 소비였다. 오바마 정부는 기본적으로 부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한다고 믿는다. 최근에는 신용카드 남용을 막는 법률도 추진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축이 그동안 생겨난 문제에 대응하는 수세적 경제정책인 반면, 세 번째 축인 ‘사회적 기업가 정신’은 오바마노믹스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공세적 정책이다. 사회혁신실과 미국봉사법은 그 신호탄이다. ‘녹색경제’는 이게 발현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분야 중 하나다. 백악관 사회혁신실은 미국 비영리 부문에서 혁신적 사회문제 해결 방법을 개발하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독려하고 지원하는 일을 맡는다. ‘미국봉사법’은 전문지식을 갖춘 미국인이 교육·의료·환경 등의 영역에서 마음 놓고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생계비를 지원하게 한다. 비영리 부문 지원과 자원봉사가 무슨 경제정책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위기 이후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아래서는 이게 바로 경제정책이다. 소비도 고용도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제아무리 헌신성과 능력을 갖춘 인재라 해도, 취업하거나 창업해서 경제에 기여하기는 어려워진다. 이럴 때 인재들이 오히려 사회문제 해결에 뛰어들게 한다는 것이 오바마노믹스의 승부수다. 미국 비영리(NGO) 부문에는 이미 혁신적 기업가 정신과 사회적 사명감을 동시에 갖춘 ‘사회적 기업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명문대학 엠비에이(MBA) 학위를 소지하고 있고, 다국적기업이나 금융사 출신도 많다. 최근 <블루스웨터>라는 책을 낸 어큐먼펀드 설립자 재클린 노보그라츠나,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육성하는 아쇼카재단 설립자 빌 드레이튼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람이 사회문제 해결의 주류로 나설 수 있도록 더 키우겠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와 기부와 비영리 활동이 국민소득에 주는 영향은 작다. 그러나 분명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되도록 하는, 생산적 활동이다. 이 부문을 효과적으로 운용한다면,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만족을 국민에게 주며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정책전략이 깔려 있는 것이다. 과거 금융시장에서 일어나 미국 경제를 먹여살리던 ‘레버리지’ 효과가 이제 비영리 부문에서 나올 수 있다는 계산이다.한국 경제는 미국보다 몇 년씩 뒤처진 트렌드를 밟아 가는 경향이 있다. 레이거노믹스의 시장만능주의 사고방식도, 클린턴 때의 벤처기업 붐도 5~10년씩 늦게 한국 주류 사회의 관심을 받았다. 오바마노믹스는 그 본질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한국에는 아직 주목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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