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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15 21:36 수정 : 2009.04.15 21:36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삶과경제

정부가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겠다 한다. 현행법상으로는 2년을 초과해 고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꺼리는 기업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실업 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게 정부 주장이다.

그 근거로 노동부는 두 가지를 든다. 하나는 정규직 전환 시점인 올해 7월 기준으로 2년을 초과하는 비정규직이 100만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현행 2년이면 해고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만 기간을 연장하면 계속 고용하겠다는 기업이 60%에 이른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다양한 반론이 제기된다. 정규직 전환을 선택하는 기업도 있는 만큼 “100만명 실업 대란”은 과장이라는 지적이 있다. 노동부 통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비정규직 활용을 조장하는 정권의 ‘친자본가적’ 속성이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접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사실 하나: “2009년 문제”라는 게 있다. 일본에서 파견노동자의 최장 사용기간은 3년이다. 제조업의 많은 기업들이 2006년부터 파견노동자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 기간이 도래하는 2009년 3월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량 실업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사실 둘: 우리 노동부에 해당하는 후생노동성은 작년 10월 이후 전국의 사업소를 대상으로 인터뷰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해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를 매달 공표한다. 최신 자료로는 지난 3월까지 3000개 사업소에서 18만4000명이 해고되었다 한다.

사실 셋: 올해 초, 마스조에 후생노동장관은 우리의 노총에 해당하는 렌고(連合)의 신년하례식에 참가해 비정규직법안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렌고 내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하던 때에 단기 고용을 금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한술 더 떠 제조업에 대해 파견을 허용하고 있는 현행 법안을 재고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와 다른 점은 세 가지다. 첫째, 일본은 진행중인 비정규직의 해고에 관해 자세한 통계를 작성했다. 둘째, 비슷하게 ‘대량 실업’이라는 문제가 예상됨에도 파견 허용기간을 늘리자고는 하지 않았다. 셋째, 역으로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일본의 정치적 결단이다. 우리보다 실무적으로 꼼꼼한 일본의 경우,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늘리면 실업이 어느 정도 줄어들지 시뮬레이션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그런 계산 없이 거꾸로 비정규직 규제 강화라는 의사 결정을 한 것이다.

무엇이 이런 결단을 가능케 한 것인가. 오코치(大河內) 이론이란 게 있다. 한때 도쿄대 총장을 역임했던 오코치 가즈오가 주창한 이론으로 핵심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본주의 국가는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 자본은 눈앞의 이익에 관심이 쏠려 사회 전체의 재생산을 살펴볼 의사도 능력도 없다. 따라서 국가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특히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일본의 관료와 정치가는 비정규직 문제가 건강한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요소라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 느낌 자체는 정치적 본능일 수도 있고 사회적 경륜의 소산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자본주의 체제의 파수꾼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국민 모두를 위한다는 수식어는 접어두자. 진정 정부가 ‘친자본가적’이라면, 그래서 자본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최소한의 자각을 갖고 있다면, 자본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비정규직법안은 그만둬야 한다.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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