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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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경제
“전세계의 각종 비영리 사업을 위해 제가 조달해 준 자금이 지금까지 2억5천만달러(약 4천억원)쯤 됩니다.” 최근 영국에서 열린 스콜세계포럼에서 만난 조지 오버홀저는 비영리 자금조달 전문가다. 그는 자금이 필요한 기관의 수요에 맞춰 자선적 성격의 기부금,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는 금융기관의 대부금, 일반 벤처캐피털이나 금융기관의 투자금 등 다양한 성격의 자금을 최신 금융기법으로 재조합해 제공하고 있다. 오버홀저는 미국 스탠퍼드대학 엠비에이(MBA) 과정을 졸업한 재무전문가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엠비에이 학위를 가진 경영전문가들은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서서 금융과 기업 흐름을 쥐락펴락했다. 그럴듯한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 다국적 컨설팅사의 컨설턴트, 투자은행과 자산운용사의 핵심적 자리는 엠비에이 출신들이 포진해 있기 마련이었다. 그만큼 현재의 세계 경제위기 상황에 대한 책임도 크다. 리먼브러더스처럼 위기를 몰고 온 금융사의 주요 의사결정권자도 그들이었으니 말이다. 위기의 근원이 엠비에이들이 만들어 놓은 시장만능주의 질서라며 손가락질하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반갑게도, 시장만능주의와는 다른 방향으로 경영전문가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오버홀저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관을 돕는 데 자신의 경영전문성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오버홀저는 외롭지 않다. 하버드경영대학원 엠비에이인 로널드 코언은 영국 금융사인 ‘사회적 금융’의 이사다. 그는 현재 영국에서 사회적 가치에 투자하는 은행을 설립하는 일을 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엠비에이인 장필리프 드 슈레벨은 전세계 150여개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에 자금을 공급하며 제3세계 빈곤 퇴치의 젖줄 노릇을 하고 있다. 그가 조달하는 대규모 자금 중 상당 부분은 영리 투자자로부터 들어온다. 이들은 모두 경영전문가이면서도 사회투자 전문가로, 또 사회적 기업가로 불린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경영대학원은 아예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 미래 경영의 패러다임이 될 것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전체 240명의 엠비에이 재학생 중 25% 정도는 사회적 기업 관련 과목을 수강하고 해당 클럽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옥스퍼드대학은 엔지오 등에서 경험을 쌓은 뒤, 사회 혁신을 위해 경영전문성을 활용하겠다는 사람을 장학금까지 주면서 따로 선발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하버드, 엠아이티(MIT) 등 주요 경영대학원도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교육과정에 도입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흐름은, 세계 경제위기 이후 경영전문가들이 움직여야 할 방향을 명확히 보여 준다. 경영이란 시장만능주의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조직이 당면한 일을 혁신적이고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기술이며 정신이다. 지금처럼 기후변화, 빈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 사회적 이슈가 당면 과제일 때는 사회 혁신이 경영전문가의 과제가 된다. 과거의 과제인 단기적 효율성 향상만을 추구하다가는 뒤처지기 쉽다. ‘엠비에이’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그러나 자칫 그 가치가 땅에 떨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사회적 가치와 경영 기법을 결합시켜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경영전문가, ‘MBA 2.0’이 필요해진 이유다.문득 내가 엠비에이과정 재학중일 때 한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1960년대라면 이곳이 로스쿨이고 당신들은 법률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초입, 그 자리는 엠비에이들이 차지했다. 여러분은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인가?”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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