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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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경제
2008년 4분기에 1억2천만달러(약 18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기업이 있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해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면서, 시장 참여자 모두가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참 경영을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어질 정도다. 그런데 그 기업이 얼마 전 직원 7천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매장도 300개나 폐쇄하겠다고 한다. 스타벅스 이야기다. 왜 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에서 이런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했을까? 그것은 바로 주가로 경영자를 평가하는 월스트리트의 보상 시스템 때문이다. 스타벅스가 대는 구조조정 이유는 상식인이 들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4분기 순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의 70%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예측보다 낮은 이익을 기록했다는 게 치명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타벅스 경영자 입장에서는 매우 합리적이다. 사람들은 기업을 주가로 평가한다. 주가는 시장이 예측하는 이익에 근거해 이미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아무리 경영을 잘해 이익을 많이 내더라도, 그 이익의 크기가 시장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면 주가는 떨어진다. 주가를 떨어뜨린 경영자에 대해 투자자와 언론은 무능하다고 비난한다. 이게 쌓이면 경영자 교체의 이유가 된다. 당연히 경영자는 시장 기대치보다 이익이 나지 않을 때 감원과 비용절감 계획안을 발표한다. 한 사회의 기업 평가 잣대는 이렇게 중요하다. 지난해 4분기 한국 주요 기업들이 여전히 큰 이익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내 마음이 오히려 서늘해진 이유가 여기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스타벅스처럼 대규모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어려운 지역의 실업급여 신청 건수가 지난해의 10배로 뛰어오르고, 중소기업과 중산층은 무너져 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주주를 위해 대규모 이익을 냈다. 그런 성과 덕인지, 삼성전자와 엘지전자의 올해 주주총회에는 임원 보수 한도 인상안이 상정된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그런 기업에 환호한다. 우리 사회도 기업도 이미, 세계경제를 위기에 몰아넣은 월스트리트식 평가보상 시스템에 적응되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기업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일자리 나누기’가 걱정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신입사원 임금 삭감은 이익을 늘릴 것이니, 주주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긴 자금을 일자리 창출에 투입하려고 하면 그 주주들은 눈에 쌍심지를 켤 것이다. 경영자가 그 주주들을 설득하는 데 드는 노력을 평가해 줄 시스템은 아직 우리에게 없다. 누구도 일자리 창출 개수를 기업 평가 잣대로 삼지 않으니 말이다. ‘일자리 나누기’는 그저 ‘일자리 줄이기’가 되어버릴지 모른다. 내친김에 부유층의 소득을 대폭 늘려서도 달성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정부 경제정책 평가 잣대로 삼는 관행도 당분간 잊어버리자. 지금은 어려운 사람들이 더 어려워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때다. 부유층의 소득을 더 늘려서도 달성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 대신, 소득 5분위 배율이나 1인당 국민소득 중앙값처럼, 상대적으로 분배상태를 반영하는 지표를 잣대로 삼자.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는 나라에서, 이익 내는 기업이 사람을 자르고 사회공헌을 줄이는 상황은 블랙코미디다. 경제위기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지금부터 단 1년만이라도, 우리 모두의 마음속 기업 평가 기준을 바꿔 보자. 순이익을 잊어버리고, 일자리 개수와 사회책임경영 성과를 기업과 경영자 평가 기준으로 삼자.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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