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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04 21:54 수정 : 2009.02.04 21:54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삶과경제

철거민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는 용산의 한 옥상에 진입작전을 지시한 지휘관은 그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법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과 직업의식 이외에, 혹시라도 대형 참사가 날 위험이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랬다면 그 확률은 몇 퍼센트쯤이라고 생각했을까?

경영대학원 재학 때, 리먼브러더스의 기업설명회에 간 일이 있다. 학교를 찾아온 채용 책임자는 무척 도도했다. ‘리먼은 예금이나 지키는 그저 그런 은행이 아니라,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금융공학으로 무장하고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투자은행’이라고 강조했다. 그들은 자신감을 가질 만했다. 엄청나게 큰돈을 벌고 있었고,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인재들도 몰려왔다. 당시 글로벌 투자은행은 모두 그랬다.

그런데 그들이 파산하고 무너진 이유도 결국 이 똑똑함과 자신감에 있었다. 투자은행들이 우쭐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스스로 ‘위험’을 다스렸다고 믿었던 데 있었다. 여러 종류의 위험을 가진 금융상품을 섞어서 재포장하고 나면, 위험은 정리되고 줄어들고, 무엇보다도 예측 가능하게 됐다. 금융공학이 제공하는 현란한 모델과 복잡한 숫자 속에, ‘위험’은 완전히 정복됐다고 믿어졌다.

투자은행이 리스크를 다스린 가장 중요한 도구가 투자손실한도(VaR; value at risk)이다. 투자손실한도란 일정한 확률 아래, 최악의 위험 발생 때 잃을 수 있는 최대 가능 손실 액수를 뜻한다. 이 수치가 높으면 위험이 발생했을 때 잃을 수 있는 자금이 크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서 ‘일정한 확률 아래’가 중요하다. 이 조건은 여론조사에서 늘 등장하는 ‘95% 신뢰구간’ 같은 것이다. 그 범위 안에서만 해당하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투자손실한도 역시 가장 높게 잡아도 99% 확률 아래서 계산됐지만, 이 숫자로 모든 위험을 다스렸다고 믿었던 게 잘못이었다. 1%의 위험은 계산 속에 없었다.

이 1%가 현실화했을 때 모든 문제가 일어났다. 전혀 계산되지 않은 드문 일이 생겨났을 때, 금융공학의 화려한 회로는 모두 망가졌다. 세계 금융시장은 일거에 혼란에 빠졌다. 이게 글로벌 금융위기다.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는 이렇게 말한다. “폭풍이 무엇인지 모르는 조종사가 모는 비행기를 계속해서 타고 간다면, 어떤 일이 생겨날까요?” 1%의 위험이란, 이렇게 아주 드물지만 일어나면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폭풍우였다.

‘똑똑함’은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투자은행들은 이 투자손실한도를 직원 성과평가 척도로 삼았다. 99% 확률 아래 얼마나 덜 위험하게 투자자산을 관리했는지를 평가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그 직원들은 이런 평가틀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들은 투자자산의 상당 부분을 평가대상에서 빠진 1%안에 몰아넣었다. 아주 드물지만, 일어날 경우 엄청나게 파괴적일 수 있는 위험에 고객 자산을 노출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더 위험한 곳에 투자한 직원이 더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위험 관리 시스템은 무너져 갔다. 전세계는 계산되지 않은 위험에 노출됐다.

위험한 시위 현장을 지키는 경찰은 존중받아야 한다. 준법에 대한 사명감도 존경받아야 한다. 그러나 ‘1%의 위험’을 무시했다면, 그 지휘자는 존중받아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오만함은 더욱 존중받아서는 안 된다. 그런 태도가 용산의 망루도 무너뜨렸고, 세계 금융시장도 위기에 몰아넣었다. 오만함을 부추기는 사회는, 고객을 파괴적 위험 안에 몰아넣는 ‘똑똑한’ 사람들을 키우게 된다. 그런 사회에 미래는 없다.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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