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14 20:39
수정 : 2009.01.14 20:39
|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삶과경제
단연 장안의 화제는 미네르바다. 과연 구속된 박씨가 진짜 미네르바냐, 진짜 미네르바는 해외로 갔다더라, <신동아>가 미네르바라고 접촉한 사람은 누구인가, 미네르바가 여러 명 있는 건 아닐까 등등 미네르바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문다. 외국 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국경 없는 기자회’는 박씨의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미네르바의 학력을 문제 삼는 일부 인사들과 언론들 탓에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력 차별이 드러나기도 했다. 오직 글의 내용과 논리만을 보고 판단해야지 그의 학력을 문제 삼아서 “속았다, 우롱당했다” 운운하는 것은 천박함의 극치다. 실력이 아니라 학벌을 따지는 것은 치사한 특권놀음일 뿐만 아니라, 그 비효율성으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미네르바 현상은 이 지독한 학벌사회에서 그나마 인터넷 공간의 아이디 평등주의가 신선한 바람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미네르바의 주장이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논란도 일어나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단순한 과장일 수도 있고 허위사실 유포일 수도 있겠다. 근본적인 문제는 개인에 대한 사기나 명예훼손이 아닌 허위사실의 유포를 사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옳은가이다. 정부를 비판하면서 사실을 잘못 알고 하는 경우에도 이를 처벌한다는 것은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이 적용한 전기통신기본법의 해당 조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라는 단서가 붙어 있긴 하다. 그런데 박씨가 공익을 해할 목적을 가졌다는 것을 과연 증명할 수 있는가? 검찰은 박씨 때문에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20억달러 손실을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 설사 결과적으로 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의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란 올바른 소리나 듣기 좋은 얘기를 맘대로 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거나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말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다.
미네르바 현상과 관련하여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점은 공적 권위에 대한 신뢰의 위기다. 정부나 연구기관이나 경제학자나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경제위기에 대하여 설명도 해 주고 예측도 해 주고 대책도 내놓는 자가 없으니 미네르바에게 열광하게 된 것 아닌가? 상황은 심각한 것 같은데 정부는 지난 외환위기 때와 똑같이 펀더멘털이 괜찮으니 문제없다고 강변하고 있으니,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을 예언한 미네르바에게 귀 기울일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유수한 경제연구기관장들이 다 모여서 747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단군 이래 최대의 곡학아세 쇼를 벌이질 않나, 대통령이 지금 주식 사면 큰돈 벌 수 있다고 꼬드기질 않나, 그러다가 갑자기 지하 벙커에 들어가 위기의식을 조장하질 않나, 도대체 누굴 믿으란 말인가? 이렇게 되면 가진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은 자구책으로 최악의 상황이 뭔지 따져볼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서 각종 위기설이 난무하고 미네르바가 떴던 거다.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다. 일자리도, 소득도, 고통도 조금씩 나눠 가지면서 힘을 모아야 한다. 이걸 위해 필요한 게 신뢰다. 믿을 수 있는 권위가 있어야 작은 계산을 넘어서서 합심할 수 있다. 드디어 개각을 하기는 할 모양인데, 과연 개각이 신뢰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미네르바를 체포하는 식의 발상을 전환하지 않는 한 개각을 백번 해도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