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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31 18:42 수정 : 2008.12.31 22:27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삶과경제

이번 송년 모임의 화제는 모두 암울하기만 했다. 도대체 이 경제의 향방이 가늠되지 않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주류였다. 불황의 끝이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경제는 결국 다시 기지개를 켤 것이다. 다만 ‘시장만능주의’라는 키워드로 요약되는 과거 경제의 질서는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다. 위기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낳게 된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질서가 될 것이냐다.

우리 주변의 변화 가운데 무엇이 새로운지를 면밀히 관찰해 보면, 경제활동과 사회적 가치가 만나는 흐름을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과거 시장만능주의적 경제에서는 인간의 이기심만을 강조했다. 경제적 의사결정에 가치가 개입되면 비효율이 생겨날 뿐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경제에도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착한 경제’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이 커지고 있다.

금융 쪽에서는 요즘 ‘기후변화’라는 주제와 관련해 일어나고 있는 돈의 흐름이 눈에 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흥미로운 실험’정도로 여겨졌던 탄소배출권 확보는, 거래가 활성화하면서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탄소배출권을 대거 확보하면서 대세를 확인했다. ‘탄소 금융’(carbon finance)이라는 말은 주요 금융 용어가 됐다.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기 위해 청정개발 체제를 도입하는 기업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이나 기업이 힘을 잃으면서, 지구의 ‘환경’이라는 새로운 자산이 ‘희소성’을 무기로 금융시장의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을 기초자산으로 한 금융상품이 개발되고 거래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 쪽에서도 변화의 흐름은 분명하다. 대기업에서 ‘지속가능경영’은 이제 주류 경영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다. 영리기업이라도 경제·환경·사회를 모두 고려해 경영하고, 특히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기업이라야 오래 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분명 영리시장에서 영리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조직의 주 목적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는 사회적 기업, 사회적 벤처가 크게 늘고 있다.

노동시장에서는 사명중심 조직의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한국노동연구원 김혜원 연구위원이 ‘2008 사회적 기업 연구 포럼’에서 발표한 ‘한국 제3섹터의 고용창출’ 연구 결과를 보면, 전체 취업자 중 비영리부문 취업자 비중은 2001년 이후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윤’을 추구하는 곳 대신 ‘사명’을 추구하면서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쪽에서는 대형유통업체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소규모, 비영리적, 직접거래를 선호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식품안전의식 강화와 함께 친환경, 유기농 식품에 대한 선호가 커지고 있다. 동시에 조직의 목적 자체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소비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인 생활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생산자를 직접 접촉해 구매하는, ‘공동구매’는 일반 소비자의 주요 소비 방법으로 이미 자리잡았다.

‘돈’과 ‘가치관’이 만난 ‘착한 경제’의 키워드는 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이나 사회책임투자(SRI)나 사회적 기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소비자·투자자·기업가 등 각 경제 주체의 모든 경제적 의사 결정에 걸쳐 있다.

새로운 질서는 위기와 기회를 모두 가져온다. 과거 질서의 키워드를 붙잡고 놓지 못하는 이는 위기를 맞고, 새로운 경제의 키워드를 먼저 발견하는 이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 2009년 경제에서 기회를 얻고 싶다면, ‘착한 경제’라는 키워드에 주목해 보자.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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