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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26 19:32 수정 : 2008.11.26 19:32

강수돌 고려대 교수, 조치원 마을 이장

삶과경제

“아파트가 와야 신안리가 발전한다.” “아파트는 신안리로, 교수는 대학으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이때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딱 3년 반 전이다. 내가 사는 마을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해서 ‘이건 아니다’ 싶어 내가 주민들과 함께 마을 공동체를 구하러 나섰을 때, 개발업자와 그들 곁에서 떡고물을 주우려던 세력이 내세운 펼침막 구호다. 아파트 짓기 어려운 땅이 ‘허위 민원서’ 덕에 아파트 가능한 땅으로 둔갑한 탈법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주민 저항과 행정 및 사법의 그물망을 피하면서 사업은 강행되었다. 이제 약 1천가구, 최고 20층짜리 아파트가 시골 마을에 열두 동 빼곡히 들어섰다. 남으로 고려대, 북으로 홍익대 캠퍼스를 낀 마을에 아름다운 생태공원도 아니고 대학문화 타운도 아닌 고층 아파트 단지라니 누가 봐도 잘못된 사업이다.

아니나 다를까, 1천가구 가까운 단지에 분양 실적은 2퍼센트도 안 된다. 언론 보도를 보니 16가구가 분양되었으나 타산성이 없어 외부 공사만 하고 공사를 중지한다 한다. 전체적으로 약 3천억원짜리 공사인데, 지금까지 대략 1천억원 가까이 들었을 것이다. 처음 ‘행정수도’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인근 아파트에 투기 수요가 몰려 분양 경쟁이 10 대 1을 넘은 적도 있다. 아마도 그런 걸 기대했을 거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게다가 투기 수요는 거품이요 사상누각 아닌가. 이게 터지기 시작한 거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자리는 아파트 자리가 아닙니다. 굳이 개발을 하시려면 행정당국과 협의해서 전원 단지나 대학 타운을 만드세요. 아니면 그냥 땅만 갖고 있다가 나중에 파시든지요. 안 그러면 늪에 빠집니다.” 내가 2005년 4월 개발업자들에게 해준 진지한 조언이다. 욕심을 버리고 내 말을 수용했다면 지금의 진퇴양난은 예방했을 터다. 업자들은 늪에 빠졌고 마을은 흉물 아파트로 고통이다. ‘윈-윈’은커녕 공멸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뿐만 아니라 행정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한다. 당시 심대평 도지사는 우리 주민 대표들 앞에서 “그 땅은 대학촌 자리이기 때문에 충남도에서도 대학 순환로 개설 공사비를 수억 지원해 준 곳입니다. 따라서 아파트 자리가 아니라 대학촌 자리이니 연기군에 제대로 하라고 공문을 내리세요”라고 말했다. 2005년 11월이었다. 그러나 실무를 맡은 도청 공무원과 연기군수 및 군청 공무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현 이완구 도지사가 새로 왔고 취임 일주일 만에 사업 승인을 하고 말았다. 2006년 7월이었다. 그간 우리 주민들은 나와 함께 행정당국 면담, 시위, 1인 시위 등을 숱하게 했다. 전문 운동가도 아닌 주민들이 나서서 집단행동을 할 정도라면 행정당국과 지방의회 책임자들은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했다. 왜 선거를 하며, 왜 혈세를 내는가. 그러나 풀뿌리 민중의 외침은 아파트 공사의 소음에 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2008년 11월, 이제 1천가구 아파트 시멘트만 남기고 공사 중단이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바로 우리 마을 경험이 대한민국 전체의 축소판이란 점이다.

지금이라도 행정당국이 책임성 있는 태도로 나서기 바란다. 업자와 당국이 책임을 분담하고 마을과 행정, 기업이 ‘윈-윈-윈’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흉물 아파트 그늘 아래 우리 풀뿌리 주민들이 겪는 삶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행정적 오판에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

강수돌 고려대 교수, 조치원 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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