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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19 19:04 수정 : 2008.11.19 19:04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삶과경제

“기쁨은 고통이나 괴로운 일에 직면했을 때 도망가지 않고 자기 자신을 해체하고 바꾸고 재생시킬 때 다가온다.” 도종환 시인의 말이다. 한국 경제가 지금 고통을 겪고 있다.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는 폭락했다. 물가와 금리는 오르고, 소득과 고용은 정체했다. 앞으로 더욱 괴로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실물경제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기업 구조조정과 도산이 잇따르고, 가계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신용불량자와 개인 파산이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고통과 괴로운 일에 직면해서 우리는 어디로 도망가려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신을 해체하고 바꿈으로써 재생시켜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도망가지 말라는 말은 곧 구조조정을 회피하지 말라는 얘기다. 거품은 빼야 하고 과잉투자는 해소해야 한다. 이를 피하려고 꼼수를 부리다 보면 결국 고통은 더 커진다. 정부는 집값 하락을 막겠다고 온갖 규제를 풀어주고 있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투기적 수요로 한껏 부풀려진 집값이 제자리를 찾아야만 미분양 문제가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정부는 유동성 위기에 빠진 건설사들을 지원한다고 난리지만 시장이 믿을 수 있는 구조조정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건설사들을 다 살리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비정상적으로 높다.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건설경기를 부양해 온 정책 탓이다. 비효율적인 건설투자로 경기 부양을 시도하다가 나랏빚만 늘리고 만 일본의 잘못을 따라 하면 안 된다.

이 밖에도 세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절실하다. 첫째, 사회안전망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생계가 무너지게 놔두는 것은 문명국가의 수치다. 경기가 얼어붙어 직장을 잃고 가게 문을 닫는 것이 어디 그들의 잘못인가? 효율성으로 따지더라도 사회안전망이 잘되어 있어야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확대할 수 있고,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도 고취할 수 있다. 구제금융 위기 이후 사회안전망을 꾸리기는 했지만, 아직 부실하다. 우리나라의 사회지출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분의 1에 미치지 못하는 창피한 수준이다. 이 분야에 대폭 투자하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경기대책이기도 하다.

둘째, 금융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 구제금융 위기 후에 금융개혁이 있었지만 그 뒤로도 카드채 위기가 있었고 집값 거품을 키웠다. 크게는 단기 외채의 급등이나 가계부채의 과대 현상도 그렇고, 작게는 펀드 불완전 판매나 키코(KIKO) 문제도 그렇고, 다 금융권이 만들어낸 문제들이다. 이를 방조한 정책 당국이나 감독 당국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 금융소비자 보호나 금융 안정성 확보 등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도 소홀히 하면서 규제 완화를 통해서 무슨 금융허브를 한다느니 글로벌 투자은행을 육성한다느니 해 온 정부의 통렬한 자성이 필요하다. 이제 금융의 틀을 기본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셋째, 대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장기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먹거리·에너지를 필두로 무역과 금융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대외의존이 심각하다. 이런 경제구조 때문에 대외 충격에 몹시 취약하다. 자급자족하자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더 큰 충격에 대비해서 경제의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자는 것이다. 식량 자급도를 높이고, 대체에너지 개발과 자원 확보를 추진하고, 내수 위주의 경제성장 구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대공황을 겪은 미국이 뉴딜 개혁으로 더욱 새롭고 강한 경제로 거듭나지 않았던가. 우리도 위기를 개혁의 기회로 삼아 오늘의 고통을 내일의 기쁨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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