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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9 19:29 수정 : 2008.10.29 19:29

강수돌 고려대 교수, 사회공공연구소장

삶과경제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흔든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이후, 패니메이, 프레디맥, 리먼 브러더스, 메릴린치, 워싱턴뮤추얼 등이 잇따라 파산했다. 월가가 공황 상태에 빠진다. 주식 및 펀드가 폭락하고 금융시장이 요동친다. 여태껏 미국에서만도 파산한 은행이 십여 곳, 향후 100곳 이상 파산이 점쳐진다. 이제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판 돈벌이 경제 패러다임이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음이 세계만방에 분명해졌다. 그런데 이 죽어가는 카지노 판을 ‘국가 개입’으로 다시 살리려 한다. 미국에서 7천억달러, 유럽에서는 1조7700억달러가 수혈된다. 그렇게도 국가 축소와 시장 자유를 부르짖던 나라가 왜 시장에 개입하나? 무슨 이론인가? 자기들 논리라면 ‘공산주의적’ 발상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한다고 투기와 거품의 금융시장이 건강해지는가? 게다가 더 중요한 질문은, 과연 그런 국가 개입이 풀뿌리 노동자들에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거다.

우선 당장엔 금융기관 노동자들이 직접 피해를 본다. 일부만 살아남고 대부분은 ‘정리’ 대상이다. 이미 월가에서도 수많은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가 보따리를 싸서 떠났다. 지난 1년 동안 무려 1천명을 정리해고한 최대의 뮤추얼펀드사인 피델리티가 조만간 전직원의 9%인 4000명을 해고할 계획이다. 재너스 캐피털그룹은 최근 115명을 해고했으며, 얼라이언스 번스타인 홀딩스도 40년 기업사상 최대의 감원을 예고한다. 금융위기는 실물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최근 들어 펩시코, 월풀, 골드만삭스, 제록스, 크라이슬러 등 미국 기업들은 금융위기와 실물경기 침체에 맞서 잇따라 대규모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올해 들어 9월까지만도 약 150만명이 해고되었다. 공식 실업률은 6% 정도지만 실제로는 10%를 넘는다.

이 돌풍은 한국에도 악영향을 준다. 최근까지 우수 인력 유치 경쟁을 벌였던 증권업계에 갑자기 감원 공포가 확산된다. 하나대투증권은 업무 중복 부서와 연봉이 비교적 높은 애널리스트에 대해 구조조정을 계획 중이고, 동양종금증권도 최근 상권이 중복되는 지점을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했다. 증권 관련 공기업인 증권예탁결제원은 조직 슬림화를 위해 팀을 절반으로 줄이고 연말까지 20명을 줄이기로 했다. 그 외 건설업계, 전자업계, 자동차업계에도 찬바람이 분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꼭 짚을 점이 있다. 그것은 과연 돈벌이 경제 질서 안에서 노동자들에게 ‘행복한’ 날이 있나 하는 거다. 경기가 좋아 모든 것이 잘 돌아갈 때는 잔업·밤샘·특근으로 과로해야 하고, 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으면 가차 없이 길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다. 물론 경기가 좋을 때는 그나마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여행도 갈 수 있어서 어느 정도 ‘보상’은 된다. 하지만 바로 그런 것 때문에 우리는 본연의 삶을 잃고 오로지 소비 중독과 일중독 속에, 한 번밖에 없는 일생을 헛살고 있는 게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정말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셈 회의에 가서 “기존의 금융 질서론 안 된다”는 발언을 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나는 “기존의 돈벌이 패러다임으론 더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투기와 거품에 기초한 돈벌이 경제가 아니라 수요와 필요에 기초한 살림살이 경제를 일구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왜 기존의 패러다임이 안 되는지 그 근거부터 확실히하는 일이다. 마냥 ‘립 서비스’로 그치지 않으려면.

강수돌 고려대 교수, 사회공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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