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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15 19:39 수정 : 2008.10.15 19:39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삶과경제

슈룽은 유학 시절 함께 공부한 중국인 친구다. 중국 정부에서 공직자로 일했던 그는, 늘 애국적이고 진지했다. 빈부 격차와 거품 논란이 있었지만, 늘 중국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자랑스러워하며 결국 그 성장의 과실이 중국인에게 골고루 돌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경제 성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중국인의 행복이라는 사명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영학 공부를 마친 뒤 다국적기업에 취업해서도 그 애국심과 자부심은 바뀌지 않았다.

사회책임경영(CSR) 국제포럼에서 발표하기 위해 마카오에 가는 길에 홍콩에 들러 그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멜라민 분유 사태 때문이다. “중국에 정말 최악의 사고가 난 거야. 지진 사태를 빼고는 최근 몇 년간 최악의 사태라고. 중국 최초의 우주유영조차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어.” 모처럼 만난 그는 저녁식사 테이블 너머로 진심으로 좌절하고 있었다.

멜라민 사태는 겉보기에도 심각했다. 마카오 포럼에 참석한 중국 기업인들은 다들 ‘킷캣’(네슬레의 초콜릿 바)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이야기를 화제에 올리고 있었다. 홍콩에서 일하는 한 중국인은 “중국 친구들이 홍콩에서 분유를 사서 보내 달라고 한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멜라민 분유 파문을 일으킨 중국 싼루그룹이 이번 우주유영 프로젝트에 유제품을 후원했으니, 우주인까지 멜라민 분유를 섭취한 것 아니냐는 자조까지 나왔다. 어디서도 멜라민 사태를 빼고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친구 슈룽의 고민은 거기서 한 걸음 더 깊어져 있었다. 중국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지탱해 온 것은 신뢰였다. 중국 경제와 중국 기업이 당장은 성장률과 매출에만 집착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중국인의 행복이라는 사명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런데 그 신뢰가 위태로워졌다. 사명을 잃어버린 기업, 영혼을 잃어버린 기업이 중국 경제를 이끌고 있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멜라민 사태의 주역인 싼루는 최근까지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일컬어졌다. 연평균 15%의 매출성장률을 기록하던 신화의 주역이었다. 그런데 사명은 팽개치고 그저 성장만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분유회사의 사명은 당연히 ‘영유아의 건강 증진’일 텐데, 정반대 행동을 했으니 말이다. 친구는 이 대목에서 절망했다.

어쩌면 이건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전세계를 휩쓸고 우리 곁에도 다가와 있는 금융위기도 마찬가지다. 모든 금융사가 ‘투자자에게 투자상품의 기회뿐 아니라 위험까지 분명하게 설명하고 관리해줘야 한다’는 자산관리인으로서의 사명에 철저했다면, 그래도 지금 같은 위기 상황이 닥쳐왔을까?

사실 기업에 손익계산서 너머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여러 세계적 경영학자들이 끊임없이 강조한 사실이다. 피터 드러커는 저서 <경영의 실제>에서 “이익 하나만 강조하는 것은 경영자가 기업의 생존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지점에까지 이르도록 오도한다”고 언급했다.

잔치가 끝나고, 위기와 불확실성의 시대가 왔다. 오랫동안 우리는 손익계산서의 숫자에 따라 흔들렸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신뢰다. 이 신뢰는 회계장부만 들이대서는 얻을 수 없다. “미래의 조직은 사명 중심 조직”이라는 프랜시스 헤셀바인의 말을 빌릴 필요조차도 없다. 멜라민 분유 사태만 돌아봐도 답은 분명하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우리 기업의 사명선언서를 다시 읽어보고, 다시 써보고, 고객과 소통해 보자. 위기일수록 되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지금이 미래를 준비하기에 더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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