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27 20:46
수정 : 2008.08.27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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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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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경제
“우리가 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 걱정을 해야 하나? … 2105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컴퓨터들이 우리들보다 더 똑똑해져서 우리 대신 일을 하고 있으리라고 짐작해 보지만, 진실은 우리는 눈곱만큼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 이렇게 머나먼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 유행이 된 것은 ‘연금재정’ 상황이 심각해 보이도록 하려는 때문이다.”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미국의 사회보장제도 개혁론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비판한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착각들’이라는 글에서 한 얘기다. 부분적 민영화를 뼈대로 한 사회보장 개혁을 2기 행정부 최대의 국정과제로 삼았던 부시 대통령은 여론의 반발에 밀려서 이를 폐기하고 말았다.
국민연금 얘기가 또 나온다.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는 2060년이면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고,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국민연금의 항구적인 재정 안정성을 위해 이번 정부 임기 내에 2차 연금개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작년에 ‘그대로 내고, 덜 받는’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아직도 너무 많이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미 용돈 연금 논란이 있는 터에 연금 수령액을 더 깎아야 한다는 것인가? 이른바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의 연금개혁론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첫째, 크루그먼의 지적처럼 먼 미래에 대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최근 상당한 지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나심 탈레브의 <검은 백조>(Black Swan)라는 책은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사실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곤 한다고 주장한다. 9·11이 그렇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그렇다.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그럴듯한 설명을 만들어 내지만 사전에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하물며 50년 뒤의 일을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가? 재정추계위는 출산율을 1.28명으로 가정했다고 한다. 이런 식이면 금세기 말에는 한국 인구가 300만명으로 줄어든다. 과거의 추세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리라는 것처럼 어리석은 전망도 없다.
둘째, 기금이 고갈되면 큰일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 과거에 우리가 부모님 봉양하면서 기금 쌓아두었다가 했나? 국민연금은 부모님 봉양을 사회적으로 하는 것이다. 연금제도를 굳이 적립식으로 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기금이 줄어들면 점차 부과식으로 전환하면 된다. 그때 가서 부담을 지게 될 손자, 증손자가 걱정되나? 그들이 우리보다 몇 배는 더 잘살 테니까 염려 놓으시라.
셋째, 재정 안정성을 염려한다 하더라도 왜 지금부터 항구적 해법을 찾아야 하나? 앞으로 수십년간은 기금이 고갈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쌓여가는 게 문제다. 기금이 줄어드는 시점에 가서 천천히 해법을 찾아도 된다는 말이다. 앞으로 석유가 고갈될 것은 틀림없지만 당장 석유 사용을 중지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부과식의 문제점이라면 저축을 감소시켜 투자와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적립식의 문제점은 국민저축 증가로 소비수요의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지금 230조원이라는 막대한 기금을 적립했고, 앞으로도 적립금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벌써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매년 쌓이는 적립금은 안 그래도 침체된 내수를 더 끌어내리고 있다.
국민연금의 진짜 문제는 사각지대 해소와 노인 빈곤 퇴치, 그리고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 제고를 통한 수익률 제고다. 진짜 문제에 집중하자.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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