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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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경제
그 칫솔회사 최고경영자는 컨설턴트들에 대한 불만부터 쏟아냈다. “컨설팅을 해 준다더니, 기계를 도입하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람이 할일이 없어지게 되는데 말이지요.” 경영컨설팅 인터뷰를 위해 찾아갔던 장애인고용 사회적 기업에서 들은 이야기다. 지적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세운 기업이었다. 공장에 들어서 칫솔 생산 공정을 지켜보니, 앞서 컨설팅을 했다는 경영전문가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적장애인 두 명이 구형 칫솔 생산 기계에 붙어 칫솔대에 모를 심는다. 또 한 명은 완성된 칫솔모의 끝을 갈아 부드럽게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모두 세 명이다. 그런데 한 층을 걸어 올라가 다른 작업장으로 가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똑같은 작업을 한 대의 신형 기계가 하고 있었다. 대신 단 한 명의 지적장애인만 서서 기계를 관리하고 있었다. 여기서 만드는 것은, 많은 물량을 계속 대야 하는 대기업 주문생산(OEM) 제품이라고 했다. 기계 한 대를 들여놓으니, 노동생산성이 세 배로 늘어난 것이다. 대신, 두 명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컨설턴트가 공장 1층과 2층 사이에 리프트를 설치하라고 하더군요. 그러면 당연히 생산성이 높아지겠지요. 상자를 나르는 사람이 없어도 될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상자를 나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상자를 나르는 일인 걸요. 그는 무슨 일을 하나요?” 그 기업은 생산성과 싸우고 있었다. 등골이 서늘했다. 남의 일이 아니어서다. 장애인은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다. 특정한 능력은 갖고 있으나 다른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따지고 보면 노동시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장애인과 비슷한 처지다. 어떤 능력은 갖고 있지만 다른 능력은 갖고 있지 않다. 경제 성장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성장하려면 생산성이 높아져야 한단다. 그래서 우리는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개발을 세금을 내서 돕기도 하고, 기술 개발을 하는 기업을 지지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생산성을 높여서 이익을 내는 한국 기업을 보며 투자도 하고 자부심도 느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렇게 개발된 기술이 내가 가진 능력을 대체한다면? 그래서 내가 시장에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면? 우리 중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기술이 수많은 화이트칼라 및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제2의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 운동)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러미 리프킨의 경고는 우리 앞에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나쁜 일이 그렇듯이, 우리 사회 가장 그늘진 곳부터 찾아온 것이다.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경제성장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좋은 이야기다. 그런데 그 ‘녹색’이 대표하는 ‘환경’ 안에 사람도 포함되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일자리도 생각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도 생각하는 그런 성장이면 좋겠다. 새로 들여온 기계 앞에 무력해지는 지적장애인도 함께 안고 가는 성장이면 좋겠다. 인터뷰를 했던 그 장애인 기업 최고경영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마케팅이었다. 제품이 좀더 팔리면 한 명의 지적장애인을 더 고용할 수 있어서다. 이런 경영자로부터 나는 희망을 본다. 통계청의 경제성장률은 숫자일 뿐이다. 이런 꿈을 가진 경영자가 성공하고, 이런 기업이 늘어나는 게 진짜 경제 성장이다. 색깔은 녹색이되, 냄새는 사람 냄새가 나고, 온도는 따뜻한, 그런 성장을 이루는 한국 경제를 꿈꾸어 본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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