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30 21:10
수정 : 2008.07.3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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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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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경제
얼마 전 진보적인 학자들이 모여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대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있었다. 발제를 맡은 나는 고심 끝에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장금리는 이미 많이 오르고 있다. 정책금리도 인상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커다란 외부 충격을 받고 휘청거리고 있다. 수입물가 상승으로 우리의 실질 구매력이 떨어진 것이다. 따라서 여느 가정주부나 마찬가지로 살림을 좀더 알뜰하게 해야 한다. 거시경제적인 긴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긴축의 고통을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지금 이 고통을 회피하면 할수록 문제는 더욱 커지고 나중에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올 것이다. 외부 충격이 일시적이고 가벼운 것이라면 조금 빌려 쓰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충격이 그리 간단치 않다. 더구나 외채가 급속하게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긴축의 수단으로 재정긴축보다는 금리인상을 택해야 한다. 환율안정이 중요한 지금, 금리인상은 환율의 하향안정화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물가상승의 한 원인이 되고 있는 유동성의 급격한 팽창에 제동을 걸 필요도 있다. 그리고 긴축에 따른 경기후퇴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민생에 대한 안정대책을 위해서 재정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긴축은 어려울 것이다.
우리 경제는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내수기반은 지극히 취약하다. 2분기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은 64.9%로 사상 최고, 민간소비의 비중은 48.3%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수출의 대부분이 대기업에 의해 이루어지고 대기업은 중소협력업체들을 쥐어짜고 고용도 확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수출 확대는 과거와 달리 경제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경제구조 때문에 고환율 정책처럼 수출을 도와주고 내수에는 해가 되는 정책은 서민경제와 고용에 직격탄이 된다. 그래서 환율 안정이 긴요한데 이는 금리인상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저 시장개입으로 환율 안정을 시도한다면 외환보유고만 탕진하게 될 것이다. 가계부채가 가처분소득의 1.5배에 이르는 상황에서 금리인상은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가계를 압박하고 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한계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 부문의 구조조정도 수반할 것이다. 고통스럽겠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빨리 받는 편이 좋다. 물론 고통분담을 위한 사회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구조조정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일자리 창출 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펼쳐야 하고, 퇴출되는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 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민생 안정을 위해서 주택가격 안정세를 유지하고 사교육비 부담 완화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구에서는 진보세력이 긴축과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일이다. 긴축으로 경기가 위축되면 노동자와 서민층이 가장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또 금리가 인상되면 채무자로부터 자산가에게로 소득이 이전되는데, 통상 저소득층일수록 자산보다 채무가 많기 때문에 역진적인 재분배 효과를 초래한다. 일례로 구제금융 위기 때 강남 부자들이 고금리를 즐기며 “이대로 영원히!”를 외쳤다는 얘기도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금리인상론을 어렵사리 꺼냈지만 의외로 토론회에 참여했던 거의 모든 학자들이 찬성했다. 긴축과 고통분담이 이 난국을 헤쳐 나갈 기본 방향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정부는 지금 성장을 위해 대대적인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부유층과 재벌이 집중적인 수혜자다. 긴축에도 반하고 고통분담에도 반하는 잘못된 방향이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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