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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23 21:49 수정 : 2008.07.23 21:49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삶과경제

아이에게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문득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흥부는 착한 일을 한 뒤 제비가 물고 온 박씨 덕분에 잘살게 된다. 그런데 흥부에게 온 박씨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착한 일이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받는’ 보상 시스템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가동된다면? 착한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 미리 대출을 해주거나 투자를 해서 그 일을 좀더 잘할 수 있게 하는 금융시스템이 있다면? 세상이 조금 더 살 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서구에서는 이런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이 이미 싹을 틔우고 있다. 영리시장의 금융기법을 최대한 도입해, 기업이나 비영리기관이 벌이는 ‘선행’이 시장에서 평가받고 보상받도록 돕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선행을 하기 위해 자금을 미리 조달하도록 돕기도 한다.

세계 최대 자선재단 중 하나인 미국 록펠러재단은 최근 ‘사회적 증권거래소’(social stock exchange)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회적 증권거래소란, 재무적 수익과 사회적 미션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사회적 기업이 상장되고, 이런 투자 대상을 찾는 윤리적 투자자가 자금을 공급하는 증권시장이다. 록펠러재단은 무조건 돈만 버는 투자에도, 무조건 돈을 줘버리고 마는 식의 기부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신세대 자산가들이 이 시장에 대거 참여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거꾸로 선행을 하고 싶은 조직은 공개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착한 마음’을 거래하는 시장인 셈이다.

영국의 리서치기관인 ‘윤리투자리서치서비스’(EIRIS)는 환경 성과, 사회 성과 등 기업의 가치를 윤리적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이 데이터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만든 주가지수인 파이낸셜타임스(FTSE) 지수에도 반영되어 있다. 영국 연기금은 이 데이터를 토대로 기업의 사회책임성을 평가해 투자에 반영하고 있다. ‘돈 잘 버는 기업’을 평가하는 데이터베이스 서비스가 있듯이, ‘착한 기업’을 평가하는 데이터베이스 서비스도 있는 것이다.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의 도움으로 지난해 닻을 올린 ‘넥스트키 센터’ 프로젝트는 ‘비영리 상장’(IPO)이라는 이름의 모금 활동으로 최근 70만달러를 모아 사업에 착수했다. ‘저소득층 주택보급 및 교육훈련 제공을 위한 건물 신축에 투자하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주당 32달러짜리 증권 형태의 기부금 증서를 팔아 모금을 성공시켰다. ‘착한 일’을 기반으로 발행한 주식인 셈이다.

시중 부동자금이 100조에 이른다고 한다.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품에 들어 있는 돈이다. 이 중 1%인 1조원만 착한 일로 들어오더라도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국민연금은 세계 최대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전 국민의 미래가 걸려 있는 이 돈이, 우리 사회가 미래에 더 나아지도록 만드는 데 투자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런 돈은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것이다. 금융상품이나 부동산에 투자되는 데는 무리가 없지만, ‘착한 일’에 투입하려 하면 낯설기 이를 데 없다. 거래하는 시장도, 평가 기준도, 데이터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증권거래소나 윤리투자 데이터베이스 등은, 이런 자금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곳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선행의 언어와 금융의 언어 사이를 넘나들며, 사회적 미션이 돈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갈 곳을 잃고 떠도는 돈이 좀더 쉽게 착한 주인을 만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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