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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02 19:38 수정 : 2008.07.18 16:54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삶과경제

추가협상과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및 청와대 인적쇄신 등으로 조금씩 잦아들 기미를 보이던 촛불시위가 정부의 전면적 탄압과 강공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국민들에게 굴복을 강요하려 들다니, 도대체 어디서 이런 현실인식이 나오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촛불의 진정한 배후는 청와대라는 농담이 농담만은 아닌 듯싶다.

도대체 왜 애초에 쇠고기 협상을 그 모양으로 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특별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밝힌 바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지름길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세상에, 우리가 쇠고기 문제를 양보하면 미국 의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비준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인가? 미국 정치를 몰라도 그렇게 모르는가?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는 미 의회가 부시 대통령 임기 중에 협정 비준안을 통과시켜 줄 가능성은 전무하다. 지금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는데(쇠고기 양보 당시에도 민주당의 두 후보가 모두 공개 반대였음), 우리가 쇠고기 아니라 말고기까지 수입한다 해도 민주당이 비준해 주겠는가?

정말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위해 미국에 선물을 주어야겠다고 판단했다면 미국에 새 대통령이 뽑힐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새 대통령에게 명분을 주면서 의회 설득을 부탁해야 했다. 설사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일단 선거가 끝나고 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입장은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블루 칼라 표심을 잡으려고 자동차 관련 협상내용을 문제 삼지만, 사실상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미국 측에 매우 유리한 협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역정책 및 협상자문위원회(ACTPN)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평가하면서 “협상단의 탁월한 성과에 갈채를 보낸다”고 했다.

그러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판단은 또 어떤가? 미국에 유리하다고 우리에게 꼭 나쁘라는 법은 없다. 무역자유화는 일반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부정적 효과보다 크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단순히 무역을 더 자유화하고 확대하자는 차원을 넘어서서 제도와 규범의 변화를 강요한다. 특히 촛불시위가 확산되고 진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의료 민영화, 식수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촛불시위에 놀란 정부는 건강보험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그건 동문서답이다. 의료 민영화의 핵심은 영리법인 허용과 민간보험 활성화다. 정부는 제주도를 필두로 영리법인의 설립 허용과 당연지정제 일부 해지를 진행하고 있다. 제주도 이후에는 부산·인천·광양 등 경제자유구역이 뒤따를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보건의료 서비스를 미래 유보에 포함시켰으나, 이는 경제자유구역 및 제주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따라서 협정이 체결되면 경제자유구역 내의 의료제도 변화가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되더라도 역진 방지조항 때문에 결코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정부는 식수 민영화도 부인하고 있지만, 물산업 기본법은 지방 상수도를 국내외 민간기업에 위탁하고 상수도 운영과 공급에 시장경쟁을 도입할 것이다. 이 법이 제정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미국 기업의 식수 시장 진입을 보장하는 장치가 될 것이다. 비단 의료와 식수뿐만 아니라 우리의 각종 공공서비스와 미국의 사적 서비스를 경쟁시키고, 자유무역협정의 각종 비차별 조항 및 투자자-정부 제소 등으로 공공서비스를 축소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광우병 쇠고기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다. 이제 촛불 민심은 한 단계 더 진화해야 한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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