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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04 19:43 수정 : 2008.07.18 16:51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삶과경제

얼마나 상심이 크신가요. 정말 잘해 보려고 했는데, 대통령 자리 즐겨 보겠다는 마음 추호도 없이 휴일까지 반납하며 열심히 뛰었는데, 그래서 조금이라도 경제를 살리고 서민들 얼굴이 펴지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 그런데 이게 뭡니까. 출범 100일 만에 국정 지지도는 20%를 밑돌고 연일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철학이나 정책공약을 지지한 적이 없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대통령님께서 지도력을 회복하고 국정 수행을 잘하셔서 나라도 발전하고 국민들도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감히 이 글을 씁니다.

혹시 <한겨레>는 안 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비판적이어서 보시기 속상하리라 짐작도 됩니다. 그렇다고 조·중·동만 보시면 현실 인식이 왜곡됩니다. 쇠고기 문제만 해도 민심을 읽지 못하고 배후 운운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형국이 되어버린 것 아닙니까? 반대 여론에 귀 기울이고, 비판 언론에 고마워하십시오. 행여나 항간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방송을 장악하고 비판 언론을 위축시키려고 한다면 오히려 정권이 수렁에 빠지고 말 겁니다. 촛불시위가 번지면서 정부의 홍보 미숙을 탓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잘못된 진단입니다. 좋은 정책 하면 홍보는 저절로 되지만, 나쁜 정책 하면서 홍보 잘해서 지지받는 건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광고하다가 국민의 분노만 커진 것 아닙니까?

내가 과거에 이렇게 해서 성공했는데 … 하는 생각은 철저하게 버리셔야 합니다. 특히 국민의 뜻을 거슬러 밀어붙이기로 일을 추진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국민은 직원이 아니라 주주거든요. 빨리 성과를 내려는 조급증을 버리시고 국민과 함께 호흡하면서 차분히 나가십시오. 쇠고기 해법이 어렵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당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심으로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국민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예스맨’을 멀리하시고 ‘아니오’ 할 수 있는 참모들을 가까이 두셔야 합니다. 참모들과 계급장 떼고 브레인스토밍 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대대적인 인사쇄신 없이는 안 될 겁니다. 전문성도 문제지만 도덕성에 큰 하자가 있는 사람들을 정부 고위직에 앉혀 놓고 어떻게 국민에게 법을 지키고 정부 정책을 따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잘 아는 사람, 나를 도와준 사람들만 챙기지 말고 폭넓게 인재를 등용하십시오.

경제를 살린다고 자신하셨죠? 국민들은 경제가 살아나기는커녕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에 화가 났습니다. 험난한 대외 경제 여건 탓이 큽니다. 대통령님께서 직접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성장보다는 안정을 중시하는 정책방향을 천명하십시오. 길이 험하면 천천히 조심해서 가야죠. 그러면서 가장 타격을 받는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챙겨야겠습니다. 법인세 인하니 상속세 인하니, 서민들과는 관계도 없고 성장촉진 효과도 의심스러운 정책보다는 경유값 폭등으로 생계 파탄에 직면한 화물차 운전자들이나 조류 인플루엔자(AI)와 쇠고기 파동으로 폐업 위기에 처한 음식점들을 돌보는 데 신경 써야 합니다. 재벌만 살찌우는 고환율 정책, 무분별한 규제완화나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재검토하시고, 원자재 가격은 올라도 납품 단가는 묶여 있어 속이 타는 중소기업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십시오. 점수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정책을 전환해서 치솟는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줘야 합니다. 또한 성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을 바꿔서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개혁 정책을 준비해야 합니다.

힘내십시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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