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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16 20:08 수정 : 2008.01.16 20:08

강수돌/고려대 교수·마을 이장

나라살림가족살림

‘디지털인지 돼지털인지’ 하며 우스갯소리를 하던 때가 있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컴퓨터가 그리 널리 퍼지지 않았다. 나중에 미국에서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이 등장하고 ‘디지털 디바이드’, 곧 ‘디지털 격차’가 유행처럼 번졌다. 그 배경인즉, “컴퓨터 및 인터넷의 보급과 활용에 불평등이 심하면 사회적 불평등이 강화되니 그 격차를 줄여야 옳다”는 게다. 지당한 논리라 봤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이 좀 수상해졌다. “저거 또 미국 컴퓨터 산업이 장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불평등 완화라는 대의명분 아래 온 세상에 컴퓨터와 프로그램을 더 많이 팔려는 속셈 아니냐는 것이다. 글로벌이니 세계화니, 자유무역이니 신자유주의니 하는 것들도 결국 장사꾼 논리 아닌가. ‘디지털 격차’를 만들어내면서 돈 벌고 ‘디지털 격차’를 줄이면서 돈 버는 전략, 이거야말로 21세기형 ‘노다지’가 아닌가.

이와 비슷하게 한국에서는 ‘잉글리시 디바이드’, 곧 ‘영어 격차’가 삶의 세계를 압도한다. 삶의 철학이나 내용과는 무관하게, 영어만 잘 하면 돈 번다. 초창기 시장에선 ‘영어 격차’를 많이 내는 이가 돈 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구자처럼 돈 벌려고 사람들이 몰린다. 시장이 커지면서 영어에 목숨 거는 이가 많아진다. 드디어 ‘영어 격차’를 줄인다는 대의명분을 내걸면 돈 벌기 쉬워진다. 도시는 물론 골골 산골 학교도 원어민이나 그에 비슷한 사람을 비싸게 살 정도니.

지난 연말 서울의 어떤 구청에서 전국 최초의 ‘영어’ 간부회의가 열렸다. “올 스탠드 업, 플리즈.” “설루트!” 구령에 따라 50명의 간부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일제식 조회에 미국식 영어를 입력한 한국인 회의다. 환갑 가까운 동장 한 분이 기초노령연금에 관해 보고를 한다. “아임 고잉 투 리포트 어바웃 ….” 이 보고에 이어 국장, 과장이 발표한다. 이것이 ‘글로벌 시대’ 2008년을 사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다. 이 구청은 관할 구역 안 네 곳에 영어센터를 세워 구민의 영어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한다.

아하, 이렇게 지방자치단체조차 ‘영어 격차’를 줄이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다니, 하고 박수를 쳐야 하나, 아니면 웃기는 연극 좀 그만하라며 고개를 저어야 하나?

우선, 말이란 ‘소통’의 수단임을 명심하자. 상대방이 외국인인데 정말 소통하고 싶다면 영어가 필요하다. 상대가 프랑스인인데 꼭 사귀고자 하면 프랑스어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상대가 한국인이라면 한국어가 서로 편하다. 내 의견을 전달하고 내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말이 필요한 것이지, 남보다 더 잘한다며 ‘격차’를 자랑하기 위해 말이 필요한 건 아니다.

나아가 ‘영어 격차’를 줄인답시고 투자하는 시간과 돈, 에너지를 아껴 차라리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격차를 줄이자. 지금도 농성 천막에서 벌벌 떨며 ‘신분 격차’를 줄이자고 외치는 비정규 교수, 코스콤과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을 줄이자. 미군부대 사진 잘못 찍었다고 국가보안법에 탄압받는 이시우씨의 고통을 나누며 ‘생각 격차’도 줄이자. 나아가 학력 격차, 빈부 격차, 또 직업 간 대우 격차도 줄이자.

‘신분 격차’나 ‘직업 격차’ 줄이기는 디지털 격차나 영어 격차 줄이기와는 달리, 교묘한 돈벌이 사업이 아니라 모두 사람답게 살기 위한 과업이다. 돈벌이에 목숨 걸 것인가, 인간다운 삶에 목숨 걸 것인가? 약 한 달 뒤 청와대를 나가는 대통령이나 들어가는 대통령 모두 이를 기억했으면 한다.


강수돌/고려대 교수·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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