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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19 18:12 수정 : 2007.09.19 18:12

유종일/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18년 동안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이끌며 경제대통령으로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회고록이 화제다. 보수적인 공화당원인 그가 민주당 출신 빌 클린턴 전 대통령한테는 극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공화당 출신의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은 혹평을 해서 세간의 관심이 더하다. 클린턴은 정치적 용기를 발휘해서 재정적자를 없애고 오히려 막대한 흑자를 시현했는데, 부시는 정치논리를 앞세워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독립성을 해치고 방만한 재정운용으로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하는 등 경제정책을 망쳤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린스펀은 부시의 방만한 재정지출을 탓하였지만 사실 재정적자의 주범은 감세정책이었다. 클린턴 정부 당시 재정흑자는 닷컴거품이라 불렸던 주식시장 과열에서 온 자본이득세 세수의 폭발적 증가에 힘입은 것이었다. 이를 이어받은 부시는 세수가 충분하니 감세를 해도 된다면서 부유층의 세부담을 완화해 주었다. 그러나 2001년 부시의 취임 이후 미국경기는 침체되고 주식시장의 거품이 붕괴되었기 때문에 이런 감세정책이 재정적자를 초래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체니 부통령은 아예 “재정적자는 문제될 게 없다는 걸 레이건이 입증했다”고 주장하며 감세정책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사실 정치인들에게 감세정책만큼 매력적인 게 없다. 재정적자로 말미암은 폐해는 매우 간접적이고 장기적으로 나타나지만 우선 당장 세금이 줄어드는 사람들은 신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정부를 축소하고 낭비를 없애서 재정지출을 줄이겠다고 내세우지만 이러한 정책이 정치적으로 쉽지 않기에 감세정책은 대개 재정적자로 이어진다. 또 레이건이 감세정책의 이론적 근거로 내세워 유명해진 삼류 경제학자 아서 래퍼의 주장을 반복하기도 한다. 세율을 낮추면 경제가 활성화되어 세수가 오히려 는다는 주장이다. 레이건의 실험 끝에 이것이 허구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아직도 공공연히 이런 주장을 하기도 한다. 감세공약은 십중팔구 ‘달콤한 허구’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여기저기서 무책임한 감세 공약과 감세 주장이 나오고 있어 걱정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사회안전망이 부실하고 복지수준이 저급한 가운데 고령화는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어서 앞으로 재정수요가 확대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더구나 남북관계의 진전과 통일비용 절감을 위한 대북지원과 투자 수요도 팽창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치권 일부와 재계 일각에서 법인세 인하 등 감세정책을 주장한다. 재계야 항상 세금 조금 내고 싶어 안달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현시점에서 당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0%로 내리겠다는 등 감세공약을 내놓은 것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5년 전 이맘때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서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이회창 후보도 법인세 2%포인트 인하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그럴 경우 1조5천억원의 세수가 줄어드는데 그 중 1조2천억원의 감면 혜택은 대기업에 돌아가고 나머지 3천억원만 중소기업이 혜택을 받게 되며, 세수 감소분을 메우기 위해 결국 서민들의 세 부담이 증대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하였다. 그런데 김진표 경제부총리의 취임 일성이 바로 법인세 인하에 의한 경기부양이었고, 이후 우여곡절 끝에 노무현 정부는 이회창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여권이라고 해서 뭐가 다를까 싶다. 더구나 김진표씨가 신당의 정책위의장이라니 말이다.

제대로 된 조세정책, 재정정책을 내놓는 후보를 기다려 본다.

유종일/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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