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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05 18:54 수정 : 2007.09.05 18:54

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지금부터 20여년 전 서울시 봉천동의 일명 ‘수재민촌’이라는 달동네에서 월세 3만원에 살면서 석사학위 논문을 쓸 때의 일이다. 자식 없이 손녀딸들과 ‘루핑집’에 살고 있던 할머니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데, 찾아온 손님을 대접해야 한다고 금쪽 같은 오백원을 손녀에게 쥐어주며 수박 한 통을 사오라고 하셨던 상황이 지금도 심금을 울린다. 이들의 생계와 거처는 무간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였지만 인정의 촘촘함은 무릉도원이었다. 지금은 이 동네가 없어져 아파트촌으로 변모했고, 그 때문에 단골로 국회의원을 배출하던 정당도 이제는 당선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도시는 쉴 새 없이 변모한다. 우리나라 도시는 너무 빠르게 변모하고 문젯거리가 많아서 살기에 심심하지 않아 좋다고도 하지만 과연 진보하는 것일까? 자본주의의 궁극적이고 유일한 문제 해결방식이 문제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라는 비아냥도 있다. 달동네를 밀어내고 아파트를 지으면서 언뜻 문제를 해결한 듯 하지만 또 다른 달동네와 비닐하우스촌이 다시 생기고, 지하실, 옥탑방으로 숨거나 아예 노숙자로 나타나면서 새로운 형태의 빈곤은 여전하고 더 심해진다. 도시는 오랫동안 이상향이자 자유와 해방의 공간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경찰(police)이라는 단어는 도시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폴리스(polis)에서 나온 것이다. 도시는 공기를 마셔도 자유롭고 해방적인 만큼이나 쉽게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지옥일 수도 있다.

사회 변혁기에는 늘 유토피아를 생각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본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적이고 공상적인 이상향을 말하고, 에우토피아라는 ‘좋은 장소’를 연상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칼 포퍼가 열린사회의 적들로 묘사한 플라톤도 일찍이 유토피아를 그렸고, 노자는 도덕경에서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이상세계를 꿈꾸었으며, 베이컨, 생시몽, 푸리에, 도연명의 무릉도원 등 많은 사람들이 개혁적 사상이자 해방정신의 표현으로 유토피아를 생각하였다. 가깝게는 영국의 찰스 황태자도 대도시 문제에 대한 해법이자 이상향으로서 향토적 생활양식에 대한 향수와 소도시적 친밀성을 추구하는 ‘파운드버리’라는 ‘도시마을’(어반 빌리지)을 건설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는 이러한 공간 또는 건축결정론적 유토피아를 몽상가의 허망이며, 비과학적이라고 배격하였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제시하는 유토피아를 철저히 배격하려 노력하였고, 경쟁시장과 합리적 경제인이라는 가상적 인간이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해체하려고 노력하였다. 일종의 대안적인 사회적 과정으로서 유토피아를 생각한 것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외피를 쓰고 자본주의 유토피아는 더욱 강고하게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오히려 모든 분야에서 사고방식의 파시즘으로 작용하고 있다. 상품시장 논리 일변도의 합리화, 전문화로 위장한 경직적인 관료화, 자본효율성만의 공간개발 논리가 사람을 대체하고 있다. 높은 담장과 철조망으로 고립시킨 주거공간, 위생처리한 창백한 상품관계가 우글거리는 쇼핑몰에서 찰나적 소비와 생활만이 난무하는 괴물 같은 도시가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양식은 아닐 것이다.

싸늘하게 냉기만 철철 흐르고 따뜻한 가슴은 없는 현대 시장경제원리 지배시대에서 유토피아 논의를 한낮 몽상이라고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유토피아의 문제설정 방식에 대한 담론 투쟁을 전개할 때다. 어느 항구로 항해하는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바람은 돕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선후보들은 어떤 도시개발 구상을 가지고 있을까?

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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