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2.14 17:41
수정 : 2007.02.1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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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원/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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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가족살림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라는 개념으로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위기의 특성을 설명해 냈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라는 명제에서 보듯이, 그는 과학기술에 바탕으로 둔 군사 경제력이 불러들이는 핵전쟁 공포나 환경 위기 등 오늘의 위기는 기존의 국가나 계급의 경계와 상관없이 전지구적·전계층적으로 작용하며, 위험을 생산한 자나 그로써 이익을 얻는 자 모두에 동시적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오늘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 명제를 그대로 적용하기에 부적절한 사례와 상황이 너무 많다. 오늘 우리 사회가 만들어내는 위험들은 너무나 차별적이다. 부동산 문제는 성실히 삶을 꾸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차별적 위험 사례다. 부동산으로 재미보는 사람들, 그따위 정책으로 어떻게 부동산 잡느냐고 호통치다 안정기미를 보이자 부동산 정책에 올인하느라 경제 망친다고 딴청부리는 언론들, 아직 공급 부족이라 불패 신화는 여전할 것이라며 불을 지피는 부동산 업자들, 가격 하락이 시작도 안 됐는데, 경착륙은 위험하다며 돈줄 죄지 말라는 경제학자들, 금리를 올리면 서민들의 구매력과 경기 위축 요인이 된다며 서민 핑계로 부동산 안정 방안들을 외면해 온 관료들, 이들에겐 이익을 누린 것 외의 차별적 위험사회가 만들어낸 위험은 작용하지 않는다.
다단계 판매 사기 사건은 그나마 뭔가 해보겠다고 나섰던 시민들이 겪게 되는 차별적인 위험의 사례다. 중·장년 은퇴자, 주부들이 많았던 피해자들은 퇴직금이나 노후자금의 일부를 위험한 곳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보았다. 반면, 정치인 등 사회적 지명도를 가진 이들은 사람들을 위험에 끌어들이는 유인책 구실을 하면서도 특별대우를 받고 위험 대신 혜택을 누렸다. 이런 위험을 불러온 법률, 제도적 환경을 만들고 수년간 방치한 관료들과 정치인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같은 일로 권력과 멀고 무력한 시민들만 차별적인 위험에 시달렸다.
고리 사채 피해는 어려운 처지에 빠져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시민들에게 차별적으로 다가오는 극단적인 사회적 위험 사례다. 연 수백프로의 고리채는 거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사람들의 삶의 기반을 뿌리 뽑을 수 있는 약탈적 위험이다. 이자를 제한하면 돈 구하기 힘들어져 더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서민들을 걱정하는 말로 이자제한법 제정을 반대하거나 수수방관하는 정치인과 전문가들, 연 66%의 이자율도 남는 게 없다며 광고에 열올리는 대부업자들, 텔레비전에 지하철 광고 벽보에 ‘피자보다 빨리’ 빌려준다는 대부업체 광고에 나서 위험한 낚시미끼 노릇을 자청한 유명 연예인들, 이들에게 고리사채의 위험이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제 이런 과제가 있는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인지조차 잊어버린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위의 세 가지 위험, 평범하게 성실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뭔가 해보겠다고 하는 사람들, 또 정말 어려운 처지에 빠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모두에게 우리 사회가 던지는 위험은 매우 심각하고 차별적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위험을 관리하고 없애는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제구실을 하지 않고 손놓고 있거나, 혹은 이 위험을 없애려는 사회적 노력에 저항하거나 숨어서 훼방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 위험으로부터 전혀 위협을 받지 않는 사람들, 혹은 가져다 주는 이익에 편승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차별적 사회적 위험을 줄이는 노력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들 숨은 훼방꾼을 찾아내고 규탄하는 일도 동시에 할 일이다.
신종원/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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