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19 16:44
수정 : 2007.01.1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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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원/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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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가족살림
시민단체의 상담실에는 서류뭉치를 들고 다니면서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시민들이 많이 찾아온다. 이분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상담을 원해 찾아왔지만 조언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말을 하고 싶어 한다. 그동안 자기의 얘기를 제대로 들어준 곳이 없다며 자기의 말을 들어 달라고 한다. 특별한 해결책이 없는 사건인데도 들어주는 것만으로 해결이 된 것처럼 고마워하고 인사하고 가는 분도 있다.
또 이들은 청와대에서부터 법원, 검·경, 시민단체, 인권위원회 등 두드릴 수 있는 창구는 모두 섭렵하여 이미 안 가본 데가 없는 경우가 많다. 사건은 대부분 사기나 사고를 당하고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했거나 하는 경제적 손해 등 개인의 권리와 관련된 일이다. 작게 시작된 문제가 풀리지 않아 결국 개인의 삶이 멍들거나 가족의 삶 전체가 피폐해진 경우가 많다. 또 대부분 재판과 관련이 있으며, 그 중 상당수는 대법원 상고심까지 끝나 법률적으로는 이미 종결된 사안인 경우이다.
또 이들은 자신이 힘없는 개인으로서 조직이나 권력, 자신보다 힘있는 강자와의 대립에서 사법부의 판단이 부당하게 작용하여 억울한 일을 겪었다고 주장하며, 법률적으로는 방법이 없는데도 끝까지 이 사건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말과 가슴에서 묻어나는 것은 ‘한’이며 억울함이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소리치며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분노와 삶의 아픔을 동시에 드러낸다.
한 전직 대학교수의 법관 석궁 테러가 있었다. 이것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대변하는 사건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억울함을 알리고 싶다’는 그의 말에 유의하면 사법 불신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어딜 감히 판사에게’ 혹은 ‘권위에 대한 도전’ 등의 관점이나, 교수로서의 능력은 있으나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문제라는 판결문의 요지를 둘러싼 시비를 떠나, 한 지식인이 왜 사법 절차에 따른 판단과 문제해결을 포기하게 되었나 하는 점에 주목한다.
오래 전부터 사법개혁 작업은 있어왔다. 2003년 현 정부에서 출범한 사법개혁위원회는 사법제도 개혁의 기본 이념을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국민의 신뢰를 증진시킬 수 있는 사법제도, 국민이 쉽게 이용할 수 있고 신속하고 공정하고 국민의 인권보장을 강화하는 사법제도 등으로 정리하였다. 이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로 이어져 4년간 진행되어왔다. 시민의 눈으로 보면 사법개혁의 요체는 불공정하고 불편한 것으로 불신받는 사법부를 공정, 신속, 편리한 서비스, 신뢰받는 사법부로 바꾸자는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한 국민의 사법 참여, 공판중심주의, 양형제도의 개선 등으로부터 시민의 권리에 직결된 집단소송제도, 국민소송제도, 징벌적 배상제도의 도입, 법조인 양성을 위한 로스쿨제도 등의 사법제도 개혁 의제들이 정쟁으로 지난해부터 한 발도 못 나가고 묶여 있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올해, 국가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정책의 큰 틀을 짜야 할 때다. 동시에 시민의 삶을 굴곡지게 하고 힘들게 하는 법이나 제도도 바르게 잡아가야 할 때다. 이런 법이 어딨어, 억울해서 못 살겠다는 말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 공정하고 신뢰를 주는 시민을 위한 사법개혁, 시민의 삶을 힘들게 하는 제도와 정책들을 찾아내고 바로잡아 가는 일에 각 정파, 시민사회, 언론, 기업 등이 모두 경쟁적으로 나서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법과 제도, 정책이 바로 서 시민의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짐이 덜어지는 한 해, 삶의 희망이 새롭게 자라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신종원/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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