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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6 09:26 수정 : 2019.11.16 11:48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독일드라마 <막시밀리안&마리>

1477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통치자로 알려진 부르고뉴 공국의 용담공(용감한 담력을 가진 군주) 샤를이 낭시 전투에서 전사한다. 그가 남긴 유일한 자녀는 딸 마리였다. 마리 드 부르고뉴는 부친의 대공(군주)직을 물려받을 수 있었으나, 여성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중세 부르고뉴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유럽의 주도권을 놓고 싸우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 프랑스 루이 11세는 부유한 부르고뉴 땅을 차지하려고 각자의 아들을 마리와 결혼시키려 경쟁한다. 누구와도 혼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마리는 곧 통치권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독일 드라마 <막시밀리안&마리>(영어 제목 ‘Maximilian’)는 중세 유럽사에서 가장 유명한 혼인이라 하는 마리 드 부르고뉴와 막시밀리안 1세의 결혼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두 사람의 결혼이 특별하다 평가받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중세 유럽에서 왕실의 결혼은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치열한 정치전이었다. 실제로 마리와 막시밀리안의 결혼은 그들의 손자인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로스 5세가 유럽 역사상 제일 막강한 군주로 등극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이보다 극적인 이유는 마리와 막시밀리안이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맺어진 관계였음에도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됐다는 점이다. 정략결혼의 한계를 초월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동화 속 왕자와 공주 로맨스의 실사판으로 회자된다. <막시밀리안&마리>는 둘의 운명적인 로맨스에 적극적으로 해석을 덧붙인다. 중세 암흑기에서 르네상스 시기로 이동하던 시대적 배경 안에서, 마리와 막시밀리안은 구습에 저항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중시하는 근대적 개인으로 묘사된다.

대표적 사례가 첫 회에 나오는 마리의 즉위 장면이다. 부르고뉴 여대공으로 등극한 마리는 당당히 선언한다. “남자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려면 부를 가질 게 아니라 욕망을 절제해야 할 것이오. 그러므로 나는 부르고뉴를 혼자 통치하겠소. 여기 있는 누구와도 혼인하지 않겠소.” ‘여자는 남자 없이는 아무 존재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불합리한 시대를 향한 저항이자 자신의 존엄을 선언하는 장면이었다. 막시밀리안 역시 강압적인 아버지와 대립하는 개인으로 그려진다. 어린 딸을 나이 많은 헝가리 왕의 첩으로 보내려 계획하는 등 “신에게서 받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버지에게 막시밀리안은 말한다. “당신은 황제일지 몰라도 행동은 잡상인이 따로 없어요. 제 길은 제가 개척하겠습니다. 제 손으로 직접.”

마리와 막시밀리안이 제일 존경하는 학자가 르네상스의 도래를 알린 에피쿠로스라는 설정도 상징적이다. 마리가 막시밀리안에게 보낸 첫 편지에 에피쿠로스의 말을 인용하고, 막시밀리안이 이를 대번에 알아채는 장면은 사상적으로 교감하는 대등한 동반자로서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준다. <막시밀리안&마리>는 중세 유럽에 피어난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이자 아름다운 인간 드라마다.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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