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01 19:03
수정 : 2019.03.01 19:18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 드라마 <브렉시트: 치열한 전쟁>
2월24일, 한국방송은 특별기획 드라마 <브렉시트: 치열한 전쟁>(Brexit: The Uncivil War)을 방영했다. 영국 현지에서 1월7일 방영된 이 드라마는 2016년 6월23일에 실시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의 막전막후를 다룬 작품이다. 애초 투표 결과 예측으로는, 당시 총리였던 데이비드 캐머런을 위시한 주류 정치인들과 주요 정당이 지지하는 잔류파가 우세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했다. 하지만 투표 결과, 영국민들은 탈퇴 찬성에 더 많은 표를 던졌다. 드라마는 이 불리했던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데 지대한 구실을 했던 탈퇴파의 선거 캠프 디렉터 도미닉 커밍스를 중심으로, 그 치열했던 선거전의 뒷이야기를 그린다.
2015년 가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준비하던 탈퇴파는 선거 전략의 귀재 도미닉 커밍스(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캠프 디렉터로 영입한다. 기존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커밍스는 제안을 거절하나, “세상을 바꿀 기회”라는 로비스트 매슈 엘리엇(존 헤퍼넌)의 설득에 다시 한번 정치판에 뛰어든다. 커밍스의 이상은 낡고 구태의연한 정치 시스템을 갈아엎고 새판을 짜는 데 있었다. 그는 주류 정치가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은 소외된 민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여겼고, 이를 위해 사람들의 행동, 심리, 감정 상태까지 완벽하게 분석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선거에 활용한다. 찬반 투표일이 가까워지면서, 국민은 갈수록 분열되고 급기야 잔류파인 조 콕스 노동당 의원이 극우주의자의 피습으로 사망하는 사건까지 일어난다. 커밍스는 예상보다 극단으로 치닫는 갈등에 당황하지만, 결전의 날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브렉시트: 치열한 전쟁>은 모두가 알고 있는 그날의 투표 결과로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더 거대하고 치열한 전쟁의 서막에 가깝다. 선거 전날, 잔류파 캠프를 이끌던 크레이그 올리버(로리 키니어)와 커밍스가 술집에서 나누는 대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수십년 전부터 밑바닥에서 서서히 끓고 있던 정치 소외층의 분노를 뒤늦게 알아차린 올리버는 커밍스의 예리한 분석을 인정하지만, 그가 이러한 분노를 더욱 부추겨 선거에 이용한 점은 용납하지 못한다. 브렉시트를 지지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지금의 정치판을 ‘리셋’해야 한다는 커밍스조차, “어떻게?”라는 올리버의 반문에는 답하지 못하고 만다. 선거 이후 커밍스는 또다시 정치 일선에서 배제당하고, 낡은 정치인들이 “똑같은 시스템을 재부팅”하는 것을 바라만 본다. 그리고 본인은 유권자들의 개인 정보를 정치적 목적에 사용해 선거의 민주적 절차를 훼손했다는 의혹으로 조사를 받는다.
영국 정치 드라마 특유의 냉정하고 건조한 시선을 유지하는 드라마는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다만 여전히 분열과 혼란에 빠져 있는 영국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아이들이 컸을 때 이 나라의 모습”을 걱정하는 극 중 한 대사에 힘을 싣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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