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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16 19:37 수정 : 2018.03.16 19:50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아노네>

사진 엔티브이

<아노네>의 주인공 츠지사와 하리카(히로세 스즈 분)는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19세 청소년이다. 하루에 1200엔 짜리 인터넷 카페에서 잠자리를 해결하고, 고독사한 이들의 집을 주로 청소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또 다른 주인공 하야시다 아노네(다나카 유코 분)도 독거 여성이다. 남편은 얼마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가 운영하던 인쇄공장도 문을 닫았다. 드라마는 세상에 혼자 남은 이들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아무런 접점도 없던 두 여성이 운명적으로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일본 <엔티브이>와 국내 케이블 채널 <트렌디>에서 동시에 방영 중인 <아노네>는 이보영 주연으로 화제를 모은 리메이크 드라마 <마더> 원작자, 사카모토 유지의 신작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원작 <마더>를 감명 깊게 본 이들이라면 쉽게 몰입할만한 요소들이 곳곳에 녹아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상처받은 외로운 여성이, 역시 부모에게 버림받고 학대당한 소녀를 만나 서로 아픔을 치유하고 대안가족이 된다는 점에서 <마더>의 모녀가 당장 떠오른다.

가장 인상적인 신은 하리카가 어린 시절의 잔인한 진실을 깨닫는 순간, 아노네가 손에 쥐어준 돌로 기억을 산산조각내며 감정을 폭발하는 장면이다. <마더>에서 철새를 바라보며 꾹꾹 눌러온 슬픔을 터트리는 츠구미(아시다 마나 분)와 그런 아이를 끌어안는 스즈하라 나오(마츠유키 야스코 분)의 바닷가 명장면에 비견할 만하다. 이 장면들은 잔혹한 운명과 대면한 약자들의 연대라는 두 드라마의 공통된 주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독특한 범죄물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마더>가 학대아동을 살리기 위한 기이한 유괴도주극이었다면 <아노네>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낡은 폐공장에서 가짜 돈을 찍어내는 기묘한 사기극이다. <마더>의 아동 유괴가 주요 인물들의 한층 깊고 어두운 상처 속으로 들어가는 긴 여행의 시작이었듯이 <아노네>에서도 아노네가 인쇄공장 마루 밑에서 남편이 감춰둔 위조지폐 다발을 발견하게 된 것은 더 많은 비극적 진실과 마주하는 계기가 된다. 조용하고 유순한 외면 뒤에 경이로운 강인함을 숨겨둔 여성의 모습으로 두 작품을 관통하는 배우 다나카 유코의 존재감 또한 강렬하다.

안타까운 것은 회를 거듭할수록 하락하는 시청률이다. 마찬가지로 그리 높은 시청률은 아니었으나 파급력은 강했던 <마더>에 비하면 화제성도 희미하다. 츠구미와 나오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들의 사연을 녹여낸 <마더>와 달리 <아노네>는 극 초반을 이끌어간 아노네와 하리카의 유대 외에 여러 갈래로 나뉜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갈수록 산만해진다는 점이 부진의 원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츠구미의 ‘좋아하는 것’ 노트처럼, 하리카의 동화 이야기처럼, 그 어떤 삶의 어두운 비극에서도 희망의 빛을 끌어올리는 사카모토 유지의 ‘마법적 상상력’은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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