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27 19:33
수정 : 2015.10.26 17:45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사일런트 푸어>
인터넷 검색창에 <사일런트 푸어>라는 이 작품의 제목을 쳐보면 “고독이라는 현대의 가난에 맞서 싸우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라는 한 줄 설명이 나온다. 이것만 보면 가난하고 외로운 여주인공이 꿋꿋하게 시련을 극복해가는 ‘캔디 스토리’류의 드라마가 먼저 떠오를 수 있겠다.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연속극 장르에서 이런 유형의 이야기와 만날 수 있다.
<사일런트 푸어>는 이런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드라마다. 주인공은 ‘캔디’가 아니라 사회복지사이고, 그녀의 직업 활동을 통해 빈곤 문제와 복지제도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사회극이다. ‘소리 없는 빈곤’ 혹은 ‘보이지 않는 가난’을 뜻하는 제목은 경제적 궁핍 상태를 넘어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훨씬 더 복잡한 현대사회의 빈곤 문제를 지칭한다. 개인의 가난이 아니라 가난의 구조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사회복지사의 이야기. 국내 드라마에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일단 흥미가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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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 <사일런트 푸어>의 주인공인 7년차 사회복지사 사토미 료(후카다 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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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7년차 사회복지사 사토미 료(후카다 교코·사진)는 최근 도입된 지역사회복지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고립당해 구조의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이들을 지역사회에서 지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기존 복지정책보다 빈곤층의 삶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적극적인 일이기 때문에 료와 같은 지역사회복지사들은 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다른 행정부서와의 협력, 지역 주민과의 연계도 힘들고 오랜 고립으로 마음이 닫힌 이들과 소통하는 일도 어렵다.
드라마는 료가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이 ‘소리 없는 빈곤’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노숙자, 치매 노인 등과 같은 기존의 복지 대상자뿐만 아니라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고미야시키(쓰레기 저택), 다중가족 문제, 무연사 등 현대사회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빈곤 문제가 폭넓게 다뤄진다. 2회에서는 신장병을 앓는 여성을 찾아갔다가 싱글맘, 히키코모리, 실직, 알코올 중독, 아동복지, 건강보험 등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결합된 난제를 발견하는 에피소드도 등장했다.
물론 이 많은 문제들이 열혈복지사 료의 정의감과 그녀에게 감화받은 이들의 선의를 더해 교훈적이며 훈훈한 결말로 이어지는 한계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복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낸다는 점은 큰 의의가 있다. 단지 개인의 극복이나 제도의 지원만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회복과 유대가 중요하다는 주제의식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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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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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을 계기로 ‘송파 세모녀 법’이라 불리는 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빈곤 문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는 있으나 근원적인 빈곤대책은 여전히 요원하다. 현재 복지 사각지대의 빈곤층은 17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심사도 까다롭다. 아이들의 급식마저 까다로운 ‘가난증명서’로 빈곤을 ‘인증’해야만 제공해준다는 사회가 아닌가. 이런 와중에 ‘보이지 않는 가난’에 대한 지원이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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