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드라마 <블레츨리 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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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 드라마 <블레츨리 서클>
지난주 열린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유난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수상 소감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가장 화제가 된 것은 각색상 수상작인 <이미테이션 게임>의 작가 그레이엄 무어의 소감이었다. 무어는 10대였을 때 스스로가 너무나 별나고 이상하게 느껴져 자살까지 시도했던 경험을 고백하며 같은 상황에 처한 청소년들에게 용기를 전한다. ‘별나거나 남들과 좀 달라도 괜찮다’는 그의 위로는 위대한 영웅이자 천재였으나 반사회적 성격과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으로 차별받은 앨런 튜링의 삶을 그린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제이기도 했다.
<이미테이션 게임>의 이러한 주제의식을 여성의 시각에서 그린 드라마가 있다. 2012년과 2014년 영국 아이티브이(ITV)에서 방영된 드라마 <블레츨리 서클>(사진)이다. 이 작품 역시 앨런 튜링이 활약했던 영국 암호해독집단의 본거지 블레츨리 파크를 소재로 한다. 훗날 영웅의 명예를 되찾은 앨런 튜링에 비해 평범한 여성들이라는 이유로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후일담을 상상으로 재구성해냈다는 점에서 <이미테이션 게임>의 대안적 텍스트로 함께 보면 무척 흥미롭다.
주인공은 수전(애나 맥스웰 마틴), 밀리(레이철 스털링), 진(줄리 그레이엄), 루시(소피 런들)라는 네 명의 여성.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블레츨리 파크에 소속되어 독일군 암호를 해독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나 종전 뒤에는 일상으로 돌아와 여성의 제한적 운명에 갇혀 산다. 비록 가상의 인물들이나 실제로 블레츨리 파크에서 활약한 수백명의 여성 이야기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기에 그 역사적 이면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시선을 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종전 9년 뒤부터 시작된다. 남편을 내조하고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 살아가던 수전은 런던을 떠들썩하게 하는 연쇄살인 뉴스에 주목한다. 여성만을 상대로 한 잔인한 범죄에 대한 분노와 전혀 단서를 잡지 못하는 경찰의 무능함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희생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블레츨리 파크에서 패턴 전문가였던 수전은 범인 행동에 일정한 규칙이 있음을 깨닫는다. 물론 경찰이 평범한 주부인 그녀의 말을 귀담아들을 리 없다. 그녀는 동료였던 밀리, 진, 루시에게 도움을 청하고 여성들만의 추리공동체가 탄생한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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