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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06 18:39 수정 : 2014.06.10 08:34

영국드라마 <북과 남>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드라마 <북과 남>

제인 오스틴의 동명 소설을 영상화한 <비비시>(BBC) 6부작 <오만과 편견>(1995)은 흔히 영국 드라마 입문용 1순위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리고 이를 재미있게 본 팬들이 그와 비슷한 시대극을 추천할 때 늘 거론하는 작품이 <비비시>의 4부작 <북과 남>(2004)이다. 시대의 편견에 맞서는 당당한 여주인공 캐릭터, 로맨스 플롯 등 유사점이 많아서다. 더욱이 <북과 남>의 원작자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빅토리아 시대의 제인 오스틴이라 불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주인공 마거릿 헤일(다니엘라 덴비애시)이 평화로운 고향인 남부 헬스턴을 떠나 북부의 거친 공업 도시 밀턴으로 이주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마거릿은 그곳에서 노동자를 잔혹하게 내쫓는 공장주 존 손턴(리처드 아미티지)과 마주치고 그에 대한 최악의 첫인상을 간직한다. 그다음부터는 오스틴 로맨스의 공식대로 첫인상의 오해로 인해 갈등하면서도 운명적으로 이끌리는 남녀의 가슴 졸이는 ‘밀당’이 펼쳐진다.

하지만 오스틴 소설 속의 응접실이 당대 영국의 사회상을 담은 소우주이듯, <북과 남> 역시 남녀 간의 사랑 그 이상의 이야기다. 그 안에는 산업혁명기 영국 사회의 계급과 가치관의 변화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마거릿의 남부가 상징하는 전통적 농경 귀족과 손턴의 북부가 상징하는 신흥 자본가 계급, 생계를 위해 도시로 몰려온 노동자와 탐욕스러운 고용주,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미덕과 주체적 여성 등 다층적인 갈등이 촘촘하게 묘사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전달하는 노동 조건의 열악함에 관한 묘사다. 예컨대 거대한 방직기계 앞 왜소한 부품 같은 노동자들 위로 섬유먼지가 하얀 눈처럼 떨어져 내리는 장면은 그들의 가혹한 노동 현실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이르면 그 19세기의 풍경은 지금 우리의 현실 위로 섬뜩하게 겹쳐지게 된다. 폐에 먼지가 쌓여 젊은 나이에 사망하는 여성 노동자의 모습 위로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산재가, 파업 뒤 일터에 복귀하지 못해 자살하고 마는 가장의 모습 위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이 포개진다. “난 지옥을 본 것 같다”는 마거릿의 대사는 그대로 우리의 현실이다.

김선영 티브이 칼럼니스트
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작품이 애써 강조하는 가치는 지극히 단순하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믿음. 2회에서, 파업 중에 집으로 몰려온 성난 노동자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손턴에게 “인간 대 인간으로 저들을 대하라”고 마거릿이 외치던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녀의 말은 평범한 것 같지만 꽤 전복적인 이념을 이야기하고 있다. 계급의 장벽, 더 나아가 젠더의 벽까지 초월하는 민주적 발언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는 근대화의 두가지 측면 중 우리 사회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소홀히 해왔던 더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손턴이 바로 그 순간 마거릿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것도 흥미롭다. 제인 오스틴의 로맨스와 찰스 디킨스의 리얼리즘이 결합된 듯한 입체적인 드라마, <북과 남>을 강력 추천하는 이유다.

김선영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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